오리무중
또 겨울이 왔습니다.
이곳으로 와서 두 번째 겨울입니다.
그전 겨울은 멀리서 출퇴근으로 보냈지만 그 겨울까지 하면 이곳에서 세 번째 겨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겨울이 싫습니다.
늙었나 봅니다.
여름보다 겨울이 더 좋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코끝이 찡한 겨울, 칼바람이 볼을 때리면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은 겨울... 그런 겨울을 좋아했었습니다.
과거 완료형이 돼버린 거죠...
지금은 춥다는 생각, 자체가 싫습니다.
이 무슨 말장난인가 하지만, 정말 춥다는 것을 생각하면 부르르 몸서리를 치게 되는 것 도 싫고
무엇보다 현실적인 생각... 난방비란 걸 걱정하니... 정말 겨울이 싫습니다.
겨울 채비는 일단 보일러에 기름을 꽉꽉 채워 넣어야 하는데 이게 겨울엔 2번쯤 채워 넣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열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고 창마다 뽁뽁이를 붙여놓고...
아파트는 윗집, 옆집, 아랫집이 단열재 역할을 하지만 여기 시골 단독주택의 벽들은 오롯이 혼자서
이 겨울 찬기운을 다 맞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요새 지은 집들은 단열재 시공이 잘되어 집이 따뜻합니다.
어릴 적 집에서 겨울에는 창유리에 성에가 끼어 있는 건 기본이고 벽에도 성에가 끼어 있었던 기억...
최악은 아침에 일어나 보면 윗목에 물그릇이 얼어 있었다는 것...
뽐뿌물을 길어 씻어야 하는 겨울엔 고양이 세수를 하고... 손은 겨울만 되면 터서 갈라지고
(그땐 왜 그리 손이 텄는지...) 목욕은 명절 때야 목욕탕 가서 하는 것이던 시절...
지금은 맘만 먹으면 하루에도 여러 번 뜨거운 물로 집에서 샤워를 할 수 있지만 사실 그것도 귀찮아서
잘 안 하고 그럽니다. 절대로 물 아끼느라 그런 게 아니라... 게으름! 이죠
지금 겨울 고민은... 동물들입니다.
개는 어릴 적부터 마당에서 살았고 또 진돗개는 추위에 강해서 눈을 파고 들어가 자기도 하는 애들이라 별
걱정은 안 하지만 요즘 이 애가 늙어서 걱정이긴 합니다. 해서 작년 겨울, 처음으로 옷 사서 입혔습니다만... 암튼 여긴 서울보다는 좀 더 추운 지역이라 개도 걱정이고 무엇보다 고양이들이 걱정입니다. 고양이들은 추위를 잘 타는 애들이고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애들은 혹독한 겨울을 못 넘긴다니 너무나 가슴이 아픈데... 그래서 일단 밥이라도 잘 먹여 영양상태라도 좋아지면 겨울추위를 잘 넘길 것 같아 밥을 주고는 있지만 일단 우리 집에 터를 잡고 사는 애가 둘이라 그 애들이 현관에라도 들어와서 밤을 보내라 조금 열어놓고 있는데 이것들이 잘 안 들어옵니다. 그냥 현관 밖에다 인터넷 구매한 길냥이 집과 임시로 깔개를 넣어준 박스가 있는데 거기서 두 애가 웅크리고 자는 겁니다. 문을 쪼금 열어 놓고 들어와 자라고 하는데 안 들어오는 건 뭔지...
이 놈들이 양심이 있어 그런 건지... 들어왔을 땐 문을 닫으면 냐옹거리며 불안해해서 들어와도 문을 조금 열어 놓습니다 그래서 현관 안쪽도 추워질까 봐 열효율 생각해서 비닐 문까지 만들어 놓았건만....
이 겨울, 나의 최대 화두는 "사직"입니다만....
어제 보스와 이야기 중 어렵사리 꺼낸 말...'내년에 제가.... 어쩌고 저쩌고....'
내년에 그만두겠다는 말을 했다가 또 본전도 못 찾고 말았습니다.
자기와 같이 나가자는 말로 나를 또 붙잡아 앉혔습니다.
그러려면 2년이나 더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매년 이번해가 마지막이야... 그러면서도 이렇게 주저 않고 맙니다.
젠장 할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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