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나만의 일요일 저녁 루틴
창 밖으로 주말의 저녁 햇살이 기울어갈 무렵, 나는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시작한다. 오늘의 메뉴는 라따뚜이. 가스불을 켜고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른 팬을 달구기 시작한다. 주방 조리대 위에서 칼날이 ‘도각도각’하고 도마에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올리브유와 마늘의 향이 주방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면 깍둑썰기한 애호박, 가지, 버섯과 각종 재료를 프라이팬에 쏟아 넣는다. 마치 작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듯, 프라이팬 위에서 재료들이 지글지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주말 저녁의 고요함을 깨운다.
재료가 어느 정도 익어가면 토마토 소스를 듬뿍 쏟아 넣는다. 원래 숏파스타와 함께 먹는 것을 즐기는데, 오늘은 왠지 좀 가볍게 먹고 싶어서 계란 두 개를 톡톡 깨뜨려 넣었다. 아차, 치즈를 깜빡했다. 급하게 냉동실에서 모짜렐라치즈를 꺼내 불과 가장 가까운 프라이팬 바닥으로 밀어넣는다. 치즈는 빠지면 정말 섭섭하다.
이제 진짜 마무리. 후추를 후추후추 뿌리고 파슬리를 파슬파슬 뿌린다. 마침 냉장고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남은 루꼴라를 한 줌 올리고, 낮 산책길에 추위를 뚫고 사온 들깨깜빠뉴 한 조각을 추가한다. 찬장을 열어 신중하게 잔을 고른다. 오늘 고른 잔은 맥주를 마실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의 스테디셀러다. 나 혼자 먹을 거니 예쁜 플레이팅은 포기하지만, 맥주잔은 포기할 수 없다.
차갑게 식힌 맥주잔을 신중하게 기울이고, 황금빛 액체를 천천히 따르기 시작한다. 등황색 맥주가 유리벽을 타고 미끄러지듯 흐른다. 잔 바닥에서부터 마치 구름이 솟아오르듯 하얀 거품이 맥주잔의 곡선을 따라 피어오른다. 잔을 들어올리면 형광등 불빛에 마치 호박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맥주가 빨리 나를 마셔달라 유혹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넓지 않은 집에 욕심내서 마련한 커다란 나무 테이블이 빛을 발하는 시간이다. 넓은 테이블에 놓인 노트북과 맥주, 그리고 따뜻한 요리는 어느 유럽 작은 미술관에서 흔히 보일 법 한 일상의 정물화를 완성한다. 한 입 크게 라따뚜이를 맛본다. 달큼한 토마토소스가 고르게 익은 야채와 함께 입 안을 채운다.
나의 킥은 냉동 파인애플과 고수다. 파인애플의 상큼하고 달콤한 맛과 고수 특유의 향이 자칫 혼자 한 그릇을 비워내기에 지칠 수 있는 내 혀를 기분 좋게 자극한다. 한 입 음식을 먹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 차가운 맥주가 입 안의 온기와 만나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오늘은 루꼴라의 알싸한 맛이 더해져 한층 더 풍성해진 느낌이다.
일요일의 저녁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유독 바빴거나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한 주에도, 이렇게 혼자만의 식탁에서 나는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한 주의 마지막을 보낸다. 때로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새롭게 채워둘 탕비실 간식을 주문하기도 하고, 다음 휴가의 여행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노트북은 거들 뿐, 중요한 것은 이 순간 음식의 온기와 시원한 맥주의 청량감, 그리고 고요한 시간이 만들어내는 작은 행복이다.
모두가 월요일을 준비하고 있는 듯 고요한 일요일 저녁이다. 맥주잔의 거품이 천천히 사그라지듯, 나의 이번 주 마지막 시간도 고요히 녹아내린다. 깔끔하게 비워진 프라이팬 주위로 빵 부스러기들만이 남아있다. ‘내일 아침은 더 부지런히 시작해봐야지.’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킨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발견한 ‘가장 행복하게 한 주를 마무리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