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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er Sep 18. 2021

스마트해지고 싶은 일본의 은행들

일본의 은행 체험기 2편




#1. 일본인의 못 말리는 현금 사랑



일본 사람들은 현금을 참 좋아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지갑은커녕 카드 한 장 안 들고 다녀도 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현금을 선호하는 문화가 너무 강해서 카드결제 등의 전자결제 시장의 발달이 매우 더뎠다.


최근 코로나19로 비대면 비접촉 금융 결제가 늘어나면서

일본에도 최근 카드 결제와 간편 페이 사용이 증가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일본의 캐시리스(비현금) 결제 비율은 30%에 채 미치지 못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캐시리스 결제 비율은 2017년에 이미 96.4%를 기록했다.)


이 말은 즉슨, 아직 일본 전체 금융 거래의 70% 이상 현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출처 : BIS, 일본은행, 일본 신용카드 협회 자료, 내각부 등


일본인이 현금을 선호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현금보다 안전한 자산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현금을 제외한 나머지 결제수단은 무용지물이 될 위험이 있으니

현금을 일정 수준 보유하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개인 정보가 유출될 것을 우려해 인터넷 뱅킹이나 카드 사용을 꺼리는 걸 보면

조금 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에는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카드 결제나 간편 페이 결제가 안 되는 곳이

수두룩 빽빽했다. 일본 여행을 가보신 분들이라면 아마 공감하실 거다.

특히 드라마 '심야식당'에 나올 만한

작은 규모의 분위기 있는 식당들은

거의 현금만 받는다고 보면 됐다.

"현금만 받습니다." (출처 : 넷플릭스 재팬 '심야식당')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카카오페이, 토스, 네이버 페이, 삼성 페이 등등

빠르고 편리한 핀테크 기술들이 일상 속에 완전히 파고든 반면,

일본은 상대적으로 간편 결제를 비롯한 핀테크 시장의 발달이 뒤처졌었다.  



#2. 코로나 이후 바뀌고 있는 일본인의 금융생활


그랬던 일본에서 최근 코로나 이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일본의 은행들조차 최근 스마트 뱅킹이나 카드결제 이용률 확대를 위해

너도나도 '캐시리스(キャッシュレス)' 캠페인벌이며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충 직불카드를 신청하면 스마트한 금융생활이 가능해진다는 의미


위의 종이는 최근 미쓰비시 도쿄 UFJ은행에서 절찬리에 홍보 중인 직불카드 발급 캠페인 팸플릿이다.

캠페인 내용을 대략 살펴봤더니

미쓰비시 직불카드를 사용하면 다음과 같은 혜택이 있다고 한다.

이제 미쓰비시 직불카드가 있으면 국내외 다양한 곳에서 이용 가능합니다!

1) 편의점이나 레스토랑에서도 결제 가능!!
2) 인터넷 쇼핑이나 음원 사이트 결제에도 사용 가능!!
3) 휴대폰 요금이나 공과금 지불도 카드로 가능!!!


정말 파격적인 혜택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은행들이 확실히 스마트하게 바뀌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일본에서 오래 거주하는 친구들 말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일본에서도 확실히 현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게 느껴진다고 한다.

카드결제를 받아주는 가게도 많이 늘어났고, QR코드 결제와 같은

간편 결제 서비스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친구의 말을 듣고 한껏 기대에 부푼 나는

이번에야말로 일본에서 현금 없는 스마트한 금융생활을 누려보리라

야심 차게 마음을 먹고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3. 카드로 물건을 살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주재원 발령을 받고 도쿄에 온 지 한 달 반이 넘었지만

일본의 멋진(?) 금융법 개정 덕분에 나는 결국 일본 시중은행에서 급여계좌를 개설하지 못했다.


최근 일본의 은행들이 스마트해지려고 노력한다는 건 거짓말인 게 분명하다.

일본 자국민에게만 스마트하고 외국인에겐 여전히 아날로그한 일본 은행이었다.


다행히 예전에 일본 직장에 다닐 때 만들어 놓은 미쓰비시 은행 계좌가

살아 있어서 그 계좌를 급여계좌로 사용하기로 했다.

일본 직장 다닐 때 쓰던 디즈니 캐릭터 미쓰비시 은행 캐시 카드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미쓰비시 은행의 캐시 카드로는  

음식점이나 상점에서 결제수단으로써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온라인 쇼핑몰 결제도 불가하다.

즉, 카드를 가지고 있어도 나는 여전히 '현찰'로만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럼 이 카드는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걸까?


이 나라에서 나 같은 외국인이 현금을 쓰지 않는 

스마트한 금융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한 꿈에 불과한 걸까?



#4. 캐시 카드와 직불카드의 차이와 사용 방법  



일본 시중은행에서 계좌를 만들면 발급해주는 카드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직불카드(Debit Card)', '신용카드(Credit Card)' 그리고  '캐시 카드(Cash Card)'다.


직불카드와 신용카드는 한국에서도 많이 쓰니까 새로울 것이 없는데

 '캐시 카드(Cash Card)'라는 건 뭔가 좀 생경하게 들린다.


처음에는 한국의 체크카드 같은 건 줄 알았다.

한국에서는 체크카드로 송금/입금/현금 인출은 물론 온오프라인 상점이나 음식점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VISA나 Master 같은 해외 결제 기능은 물론 후불 교통카드 기능까지 장착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캐시 카드는 한국의 체크카드와 달리 결제 기능이 없다.  

오직 ATM기에서 '현금'인출 또는 입금하거나 계좌의 돈을 송금하는 기능만 가지고 있다.

해외 결제 기능이나 후불 교통카드 기능이 없는 건 뭐 그렇다 치더라도 온오프라인 상점이나 음식점에서도 사용이 불가하다.


결제 기능이 있는 카드를 사용하고 싶다면 직불카드신용카드를 신청해야 하는데,

보통 일본 시중은행들은 외국인들에게 신용카드를 잘 만들어 주지 않으므로...^^

내 선택지는 단 하나, 직불카드(Debit Card) 뿐이다.


일본 직불카드의 기능은 크게 다음 3가지이다.

1.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결제 가능
2. 인터넷 쇼핑몰에서 결제 가능
3. 해외의 ATM기에서 현지 통화로 인출 가능


그러나 한국처럼 직불카드로 모든 다할 있는 것은 아니다.

직불카드로 할 수 있는 금융 활동은 한국에 비해 상당히 제한적이다.

직불카드로 할 수 없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일본 국내 ATM기에서 현금 인출/송금/입금 불가
2. 카드사(VISA, Master 등) 가맹점이 아니면 결제 불가
3. 원칙적으로는 공과금(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등) 납부 불가  
4. 분할 납부 불가 (일시불만 가능)
5. 후불 교통카드 기능 없음


한국의 체크카드나 직불카드에 비해서는 기능이 상당히 제한적이지만,

그래도 일단 만들어라도 놓으면 현찰 박치기 생활에서 어느 정도는 해방될 수 있다.


일본의 캐시 카드와 직불카드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의 캐시 카드와 직불카드의 차이점 정리


차이점을 보면 알겠지만, 캐시 카드와 직불카드는 상호보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캐시 카드는 현금 인출/송금/입금만 기능, 직불카드는 온오프라인 결제만 기능)

만약 일본에서 카드를 사용하고 싶다면, 캐시 카드와 직불카드를 두 개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  

 

참고로 최근에 발급되는 캐시 카드에는 IC칩이 장착되어 나온다.

결제 기능도 없는 주제(?)에 IC칩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 궁금해서 은행 직원분께 여쭤봤더니

캐시 카드에 장착된 IC칩은 무려 '도장'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헐 대박!!


일본에서 살아본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일본은 아직까지 도장이 필수인 나라다.

도장 선진국 일본

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가는 도장 선진국으로,

각종 관공서, 부동산 계약 등에는 물론, 은행에 갈 때도 도장이 꼭 필요하며

심지어 용도에 따라 다 다른 도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 캐시 카드에 장착된 IC칩만 있으면 '은행 업무용' 도장을 가지고 가지 않아도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히 혁신이라 할 만하다.



#5.  스마트하지 않은 카드 발급 과정  



과거에 일본에 살 때 쓰던 계좌가 살아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

바로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직불카드 발급 신청을 했다.

일본에서도 이제 인터넷으로 직불카드 발급을 신청할 수 있다니 감개무량한 순간이다.


카드 발급 신청은 스마트하게 핸드폰으로 완료했지만 신청한 카드를 발급받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카드 발급을 신청하면 일본 은행에서는

장인정신으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카드를 제작하기 때문에

보통 7~10일 정도 걸려서 우편으로 불시에 집으로 보내준다.  

배송 추적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당연히 배송일도 지정할 수 없다.

회사를 배송지로 지정할 수 없고 계좌 개설 때 등록해놓은 집주소로만 배송이 가능하다.


만약 이사를 해서 집주소가 바뀌었다면

통장, 캐시 카드,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

그리고 계좌 개설 시 사용했던 인감도장을 가지고 은행에 방문해서 직접 주소변경을 요청해야 한다.


만약 내가 집에 없을 때 카드가 도착하면 어떻게 될까?

집배원이 우리 집 메일함에 부재중 엽서를 한 장 두고 다시 카드를 도로 가져간다.

결국 평일 낮에 집에 없는 나 같은 직장인들은 관할 우체국에 가서 카드를 받아와야 한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오매불망 카드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카드에 대한 애정과 집착은 한층 더 깊어진다. 


이것은 분명 카드에 대한 집착을 증폭시킴으로써

카드 소유자가 카드를 더욱더 애용하게 만들려는

일본 은행들의 스마트하고 교묘한 임이 틀림없다.



카드 발급을 신청한 후 일주일이 지났다.

카드가 도착하기는커녕 우편함에 부재중 엽서도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점심시간에 은행을 직접 방문해 카드 배송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물어보았다.

은행에서는 그제야 나한테 우편물 추적번호알려주며 본인들은 우편물이 왜 안 갔는지 알 수 없으니 우체국에 문의를 해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우편물 추적번호를 알려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일본 은행의 교묘한 에 놀아났다는 생각에 헛웃음만 나왔다.


인터넷에서 우체국 우편물 추적번호를 조회해보니

'당일 도착 예정'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확인차 우체국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내 우편물 추적번호를 말하고 오늘 우편물이 도착하는 것이 맞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우체국 시스템 상 내가 사는 주소에 내 이름이 등록되어 있지 않아서

우편물을 배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편물을 받고 싶으면 거주 확인을 먼저 해야 한단다.


????


순간 당황했지만 나는 지성인이기 때문에 평정심을 되찾고 어떻게 거주 확인을 하면 되는 거냐고 부드럽게 되물었다.

핸드폰이나 이메일로 본인 인증을 하면 그걸로

거주 확인이 되겠지 생각했는데 그것은 안일한 생각이었다.

일본에서 거주 확인을 위해서는 반드시 우체국에 직접 방문해서

우편으로 '내가 여기에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엽서를 보내야 한다.

일종의 '신고식' 같은거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고 당황해서

'네?? 어떻게 하면 된다고요?'라고 되물었더니

고객센터 직원분이 내가 일본어가 서툰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셨는지

다시 한번 좀 전보다 느린 속도로 또박또박

'엽서를 가지고 우체국에 가서 우편으로 보내세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 우편함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부재중 엽서 대신 '거주 확인 요청서'라는 엽서만 메일함에 달랑 들어 있었다.

우체국에서 보내온 거주 확인 요청서



내가 일본의 아날로그 감성을 너무 얕잡아봤던 것이다.



그다음 날인 이번 주 금요일,

거주 확인 엽서를 보내기 위해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우체국을 방문했다.

마치 대학에 입학 수속 서류를 제출하는 수험생이 된 기분이었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길 바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엽서를 부치고 나왔다.


우체국이 위치한 건물 1층에 무료 갤러리 전시를 하고 있길래 잠시 머리도 식힐 겸 가볍게 둘러보았다.


심오함이 돋보이는 작품
뭔진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작품
처음 보는데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그


길을 멈추게 만드는 범상치 않은 그림을 발견했다.


....세...세윤이 형..?


개그맨 유세윤 님을 쏙 빼닮은 분이 쓸쓸하고 우수에 찬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계신다.


먼 타국에서 이렇게라도 만나 뵐 수 있어 영광이다.



#6.  딩동! 카드 왔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엽서를 부친 다음 날 주말 오전,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

.

.

카드가 도착했다..!!!!!!


드디어 내 품에 온 미쓰비시 빨간 카드


진심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대학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만큼 기뻤다.

별의별 삽질 끝에 겨우 내 손에 들어온 카드가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일본 은행의 교묘한 계략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드디어 현금 생활을 청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출 수 없어 온 방을 헤집고 다녔다.


이런 사소한 걸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니

역시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닌가 보다.






기다림의 미학,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얻은 (예전보다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

인내 끝에 찾아오는 성취와 기쁨.


이런 것들이 바로 일본의 아날로그 감성♥이 주는 묘미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금융에 있어서까지 아날로그 감성을 추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금융 서비스는 역시 빠르고 편리한 게 최고다.


최근 스마트해지려고 애쓰는 일본 은행들의 노력은 가상하나 외국인에게도 조금 더 스마트하고 너그럽게 대해주길 바란다.




P.S. 한국은 역시 핀테크 강국이다.

우리나라의 스마트한 핀테크 기업들이 일본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줬으면 좋겠다.

이곳은 정말이지 기회가 도처에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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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tartup-in-seongudong.tistory.co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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