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 위의 앨리스 Jun 28. 2024

퇴사자의 하계휴가계획

반려식물과 함께하는 초호화 베란다 만들기 프로젝트


 요즘 부쩍 식물에 빠져있다. 원래 꽃은 한달에 한두번씩 사서 화병에 꽂아두곤 했지만 잦은 여행으로 집을 상반기 내내 거의 비우다시피 해서 보살핌이 필요한 식물을 거의 키우지 않았었다. 캐나다에서 급작스레 돌아온 이후 상황이 좋아지긴 했지만 당분간 해외에 나가긴 힘들 듯 하고 적어도 여름은 한국에서(그것도 거의 집에서) 보내게 될 것이 명확해 그동안 정리되지 않았던 집안 곳곳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넓은 베란다 공간에 버려지다시피 했던 화분들을 돌보며 놀랐던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사실 지금 사는 집을 매입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숲 뷰였다. 우리집은 커다란 공원이 앞에 있으면서 막히지 않은 뷰를 가지고 있다. 처음 집을 보러 다닐 때는 지금 집보다 조금은 더 높은 층을 원했다. 하지만 매물이 없었고 지금 사는 집은 비교적 저층이라 공원을 위에서 조망하는 뷰는 아니지만 공원 나무의 머리끝? 부분을 볼수 있는 정도의 층이다. 하지만 나무가 아주 시야를 가리는 높이는 아니라서 창문의 아랫쪽 반은 나무, 위쪽 반은 하늘을 볼 수 있다. 정남향이라 해도 잘 들어와서 집이 밝다. 전에 집은 초고층이라서 시야가 트여있고 조용하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살아보니 나는 지금과 같은 저층 나무뷰가 잘 맞는 것 같다. 앉아서 나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자동으로 편안해지는 매직을 경험하고 있다. 다행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병의 물을 갈아주고 식물에 분무를 해주면서 아이들의 상태를 살핀다. 잎이 마르진 않았는지, 새 잎이 돋아나는지, 쳐졌는지, 키가 조금 커졌는지 등등. 요즘 바질과 데이지꽃 씨앗을 사서 화분에 심었는데 아주 꼬꼬마 잎이 솟아나와 귀엽다. 주기적으로 바람도 쐬어주고 덥지 않게 물도 뿌려주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한편으론 혼자 사는 집이지만 혼자가 아닌 것 같은 착각도 느낀다. 일을 하느라 집을 자주 비우는 1인가구라면 반려동물을 키우기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 반려식물은 그렇게 손이 많이 가진 않아서 부담없이 정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있는 화분을 돌보다 보니 넓은 베란다가 훵하단 느낌이 들었다. 구축 아파트다 보니 거실은 확장했지만 안방 베란다가 거의 방 하나 크기만큼 넓다. 그것도 내가 이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어차피 퇴사를 염두에 뒀었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때 베란다에 미니정원을 겸한 나만의 힐링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차피 집콕할 거, 그 공간을 꾸며보기로 결심했다. 커다란 화분들과 작은 화분들을 검색하고 고민고민하며 하나둘씩 사모으고 있다.  첫번째로 들인 새 반려식물은 내 키보다 20센티미터는 더 큰 유칼립투스 화분. 회사다니며 키웠던 화분들을 내가 많이 죽여봐서 이번만큼은 진짜 잘 키우겠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래서 세개나 말려죽였던 마오리 소포라도 다시 주문했다. 이번에는 정말정말 오래 지켜봐야지.


 나의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내가 미친듯이 여행을 다니는 것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어떤 길로 가는 중간 여정일 것이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었다. 계속해서 비행기티켓을 끊어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스스로 "내가 너무 무리하게 사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의문을 품었던 적이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 여행들을 통해 내가 다시 내 일상을 회복하고 내면을 다지는 힘을 얻었다. 그렇기에 여러가지 얽혀있는 집안일과 가족들을 다독일 수 있었음을 이젠 안다. 언젠가는 또 길을 떠나겠지만, 떠날 수 없을 때에도 지금 있는 이 곳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고 싶다.


 백수생활을 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아직은 재정비의 시간이다. 집안일이든 여행이든 무언가는 끊임없이 하면서 시간을 보내와서 그런지 퇴사가 굉장히 오래전의 일인 것 같이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 쉬고 뭔가 해야 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의 속도에 맞게 일상을 돌보고 있다. 아, 오늘은 베란다에 놓을 간이 해먹침대를 주문할 거다. 장마나 무더위에 선풍기 틀어놓고 반려식물들과 베란다콕 하면서 이동형 TV를 보련다. 이정도면,  이번 휴가는 최고 아닐까.

 

아직은 before 인 베란다.  트렁크부터 치워야겠다ㅋ


이전 11화 지옥같은 캐나다 탈출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