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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Jul 06. 2024

상사놈들아 그게 그렇게 힘들더냐

우리가 많은 것을 바란 게 아니잖아 

 "아, 이번에도 망했어."


 동기의 푸념섞인 한숨을 들으며 그제서야 지금이 인사철인 걸 기억해냈다. 그놈의 승진. 부서이동. 

나의 X회사는 너무 훌륭해서(?) 1년에 적어도 한번 많으면 두번 세번 인사 이동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장 기분따라....는 아니겠지만 승진인사가 10년동안 있다 없다를 제멋대로 하다가 이제는 1년에 1번으로 좀 안정화 되었다는 거? 


 라떼는....너무 아날로그적인 갬성이 넘쳐나서 그랬는지 한번 부서이동을 하면, 다같이 책상과 짐을 들고!

건물과 층을 넘나들며 대규모 이사를 했어야 했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여...)일 좀 할만하다 치면 사람 바뀌고 위치 바뀌고 담당부서 바뀌고....일하는 우리도 짜증나지만 민원인들은 어땠을까. 한달 전에 전화했을때 담당자 번호가 전화가 안 되고, 물어물어 찾아 전화하면 담당자가 바뀌었다고 하니..


 아무튼, 매년 오는 그 인사철이지만 회사의 공식 노예 타이틀에 빛나는 내 동기들한테 희소식은 남의 일일 뿐이다. 우리 기수는 회사의 보릿고개가 시작될 때 뽑히는 바람에 근 7년을 막내생활을 했어야 했고 그 이후에 뽑은 신입은 쥐똥만큼이라 나 역시도 막내생활을 만 10년을 했다. 팀에 후배가 생긴다는 게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그런데 승진도, 하도 윗 기수들 인사적체가 심각해서 우리는 우리 아랫기수들이 2계급 승진하는 기간의 2배가 걸렸다. 2계급 승진하는 기간이 아니고, 1계급 승진하는데 말이다. 니미럴. 우리기수보다 10년 늦게 들어온 것들도 같은 급이 되었는데 내 동기들은 승진하려면 아......마도 몇년간 할 수 있으려나....이러다 밑에 기수를 더 빨리 시킬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다.


 이쯤 되면 독기가 바짝 올랐을 거라 생각하는데 내 동기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순하다. 기본적으로 화를 탑재한 성격의 소유자가 없다. 그래서일까. 우는 애 젖 물린다고 하던데, 그런 푸대접을 해도 가만히 있으니 

부서배치도 그저 테트리스 빈자리 메꾸듯이 취급을 많이 당했다. 내가 그만둘 때 고려된 사항 중에도  그런 게 있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안 대하고 짐짝 취급하듯 하는 회사의 태도가 얼마 없던 열정도 꺼트렸다. 적어도 일명 '부양가족' 은 한명도 없었는데도. 


 아니나 다를까 당연히 우리 기수에서는 승진자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동기들은 누구한테 물어봐도 아마 "승진은 무슨 아직 멀었어." 라고 진심으로 말할 것이다. 직장의 꽃은 승진인데 어쩌다 우리 동기들은 그렇게 된 걸까. 승진은 둘째치고, 후배들은 잡무 안 한다 내가 왜 하냐 이러면 만만한 게 우리 기수이니 "너 오래 했잖니 니가 좀 해줘" 이런 식이다. 벌써 20년차를 향해가는 동기들도 최소 내일모레 마흔인 애들인데 왜 엊그제 들어온 새끼들(아무리 힘들게 들어왔어도 막내로 들어왔는데 나 잡무 싫어요 하면 그게 사람새낀가 싶다. 꼰대라고 하면 님말맞...) 냅두고 10년 그짓한 직원만 죽어나는지....그래, 10년 했는데 몇달 또 못하겠어 하면서 일하면, 최소한 평가점수라도 잘 챙겨줘야 인지상정인데....그것도 없다. 이쯤되면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그런데 내 동기라서가 아니라....그래도 양애취처럼 일 안 하고 그런 애들은 없다. 다들 가정이 있고 나이도 있고, 하던 가락이 있는데. 어제 동기와 오랫만에 만나 술잔을 기울이면서 회사 얘기를 했다. 그 친구는 부서 이동을 원했는데, 부서에서도 얘가 너무 오래 고생을 해서 이번만큼은 꼭 보내주겠노라 약속했는데, 결과는 아니나다를까 또 도르마무. 왜그러냐 물었더니 "필수인력"이란다. 우라질 그놈의 필수인력. 나도 그놈의 거시기라고 해서 입사하고 6~7년을 한 부서에서 한번도 인사이동을 하지 못했다. 사무직에 필수가 어딨어. 와가지고 배워서 하면 다 되는걸. 나같음 욕을 한바가지 하고 씩씩댔을텐데 얘는 웃었다. 야, 웃음이 나와? 했더니 그런다. 그럼 웃지 우냐? 이젠 달관한 듯한 표정이다.


 얘기를 하다 하다보니 그런 얘기가 나왔다. 사실 우리가....승진을 바란 것도 아니고, 평가점수 잘 챙겨달라고 생각도 안했고(우린 연공서열 때문에 오랫동안 거의 점수를 받지 못했다) 좋은 부서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인사상담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인사시즌이 몇번 지나도 우리동기들은 인사상담을 받은 적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다같이 곰들이었다....) 물론 승진도 하고 점수도 잘 받고 좋은 부서도 보내주면 좋겠지. 하지만 그걸 바란 게 아니었다. 내 친구가 한마디 했다.


"그냥, 너 고생하는 거 안다. 참 수고한다. 그 말 한마디면 되는데. 왜 그말 한마디 그렇게 듣기가 힘드냐."


그래. 말 한마디 뿐이었다. 오랫동안 참 애썼다. 고생한다. 못 챙겨줘 미안하다. 그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었다. 잘한다는 칭찬은 바라지도 않았다. 내가 나이를 조금 먹고 후배들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 그런 생각이 드는 매 순간 표현할 수는 없지만 자리가 됐을땐 항상 표현하려 노력했다. 밥 한끼, 차 한잔 사주는 것보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필요했을지 지 너무 잘 알아서. 아니 그리고, 그게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본인들 승진에만 눈이 벌개 있으면서 겉으론 아닌 척, 하는 인간들을 볼 때면 왜 저럴까 싶었다. 밉든 곱든 자기 팀원들이고 동료인데 챙겨주지는 못할 망정 퇴근하는 애한테도 "XX씨 오늘도 수고많았어" 빈말 한마디도 안 하는 인간을 상사로 모시고 일하기도 싫은 적이 많았다. 그럴 때면 안 그러려 해도 "내가 그정도로 쓰레기인가? 일을 그정도로 못 하나? 아님, 내가 뭘 얼마나 잘못해서 상사한테 그말 한마디를 못 듣나?"라는 자괴감에 힘들었다. 나의 친구도 같은 말을 했다. 몸이 그렇게 아플 때도 야근하면서, 일하기 싫다고 뻗대는 후배들 뒤치다꺼리 하면서 그렇게 살았는데 말 한마디도 못 들을 정도면 그렇게까지 해서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고.


 나의 X회사는 객관적으로 참 좋은 회사다. 업계에서도 꽤 괜찮은 회사로 알려져 있고, 정년도 보장되어 있고,

그리고 그렇게 일 드릅게 안 하는 부양가족들이 넘쳐나도 안 짤리는, 게다가 육아휴직제도도 남녀직급 상관없이 자유롭게 쓸수 있다. (물론 들여다보면 거지같이 힘들고 이상한 것도 많지만 객관적으로는 그래도 상위 10프로 정도에 드는 조건인 건 맞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상사놈들이 있다면 정말 한마디 날려주고 싶다. 인간들아! 그 돈도 안 드는 말 한마디가 뭐가 그리 힘들더냐? 말 한마디로 사람도 죽고 사는데. 니들 퇴근할때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인사받을 땐 아무 생각도 안드냐? 가족보다 오래 같이 있으면 밉든 곱든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제발, 제발 좀 인간부터 돼라. 썩을! (동기들한테 미안한데 다시금 그만둔 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에잇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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