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게 미덕인 시대, 나는 '그만두기'를 선택했다

짜치는 일이 커리어가 될 때

by Jane



"조금만 더 버텨봐." "다들 힘들어도 참고 다니는 거야."




퇴사를 고민할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오래 버티는 사람을 칭찬하고, 일찍 그만두는 사람에게는 "왜 못 버텼어?"라고 묻는다. 마치 얼마나 오래 참고 견디느냐가 그 사람의 커리어 전부를 증명하는 척도인 것처럼.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버티는 것 자체가 언제부터 목적이 된 걸까?


최근 도서관에서 우연히 Quitting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솔직히 처음엔 그냥 가볍게 제목만 보고 빌려왔는데, 읽다 보니 <그만두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책은 아주 불편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우리는 왜 끝까지 버티는 것을 항상 미덕이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진짜 실수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대신 선택해줄 것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조직이 정해준 방향, 시장이 만들어준 커리어, 주변이 괜찮다고 하는 길을 그냥 따라가는 것. 그게 어쩌면 가장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 회사를 파트타임 기간까지 합치면 10년 이상 다녔다. 그 회사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지금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처럼 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생각한다. 무언가를 제때 그만두지 못해서 억지로 버티며 마모된 내 영혼과 허비된 시간은, 무엇으로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만두지 못한 못난 관계, 그만두지 못한 어리석은 식습관, 그만두지 못하고 끝까지 읽은 책, 그만두지 못하고 꾸역꾸역 버텼던 회사.


그런데 고통을 오래 참는 것이 성실함의 증거가 되는 세상. 조금 이상하지 않나?




그런데 사실 책에서 말하는 '그만두기'는 당장 사표를 내고 모든 것을 한 번에 폭파하듯 때려치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내 삶의 자원을 재배치하는 전략적 조정이다.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해도 충분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의미 없이 숏폼 영상을 넘기다 두세 시간을 날리는 습관. 나도 꽤 심각한 편이라 5~6시간을 내리 본 적도 있다. 그게 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뇌는 그 내내 소모되고 있다. 그 습관을 조금씩 줄이는 것도 그만두기다.


만나고 나면 이상하게 기운이 빠지는 사람과의 약속. "오래된 사이니까", "거절하면 미안하니까" 하며 꾸역꾸역 나가고 있다면, 그 '다정한 가면'을 쓰는 일을 이제는 그만둬도 된다. 내가 다정해야 할 대상은 남이 아니라, 먼저 나 자신이어야 하니까.


그리고 "이것도 못 해"라는 완벽주의적 자책을 그만두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나는 평행주차를 잘 못한다. 예전엔 그게 자존심 상해서 일부러 넓은 주차 공간을 찾아 돌아다녔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내가 주차까지 완벽해야 할 이유가 있나?


자책을 그만두는 순간, 인생이 생각보다 훨씬 가벼워진다.





그만두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다.

버티는 것이 의지력인 것처럼, 그만두는 것도 전략이다.

작은 것을 그만둘 줄 아는 사람만이, 결국 인생의 큰 궤도도 바꿀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요즘 달달한 것 먹는 걸 그만두기에 도전 중이다.

밥보다 빵이 좋고 디저트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가, 영원히 안 먹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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