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인 Oct 17. 2021

50일 그리고 안정세로..

23주 2일생을 낳았다

2021년 2월 13일   재태주수 28주 생후 36일


설 연휴. 설 당일날 남편만 잠시 시댁에 다녀왔다. 그리고 모유를 갖다 주러 매일 병원에 출입해야 하기 때문에 2주에 한 번씩 코로나 검사도 받았다. 아기는 겨우 수술 전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거짓말처럼 안정세를 취하고 있고 그래서 약을 많이 줄이고 있다고 한다. 사실 마음을 많이 놔서 어떤 일이 생겨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 우리 아이는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살게 도와주고 싶다. 타인에게 폐만 안 끼치는 선에서 마음껏 하고 살아.



2021년 2월 15일   재태주수 28주 생후 38일


심장초음파를 봤다. 가장 우려했던 동맥관 개존증이 이번 수술로 인해 더 벌어졌을까 걱정 많으셨는데, 오히려 4mm에서 2.8mm로 닫히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변도 조금씩 보고 있고 아직 안정세라고 볼 순 없지만 수술 직후 줄 수 있는 약의 최대치 2배 이상을 주고 있었는데, 오늘은 85% 정도 투약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으로 밖에 나가서 외식을 했다. 첫 외식이라고 나름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는데, 해산물 스파게티가 비리고 맛이 이상했다. 내 입이 이상한 건지 정말 요리가 이상한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아서 그냥 대충 먹고 나왔다. 아기가 잘 지낸다고 하니 그나마 평범했던 시간들처럼 밖에서 밥도 먹고 들어올 수 있다. 네가 잘 지내야 우리도 살아갈 수 있단다.



2021년 2월 19일   재태주수 29주 생후 42일


배변이 또 안된다고 한다. 배는 계속 불러있다. 이러다가 장에 문제가 생겨서 두 번이나 수술했었는데.. 세 번째는 정말 장담할 수 없다. 두 번째 장수술이 끝나고 소아외과 교수님께서 수술 결과 설명해주시면서 다음번에 또 수술하게 되면 절대 안 된다고 우리는 이제 만나면 안 된다고 하고 가셨었다. 남편과 나는 극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금식을 하기로 했다. 드디어 분유 먹으면서 잘 자라나 싶었는데.. 너무 불안하다.



2021년 2월 22일   재태주수 29주 생후 45일


금식을 끝내고 분유를 먹기 시작했다. 모유보다 더 가벼운 특수분유라고 했다. 분유를 먹자마자 나흘 정도만에 100g이 늘었고, 그 100g이 늘었다고 얼굴이 빵빵하게 살쪘다. 곧 50일이라 엄마 아빠 목소리라도 녹음해서 보내주고 싶다. 동화책도 사고 안 쓰는 핸드폰 공기계에 녹음을 했는데 녹음해서 듣는 내 목소리는 너무 이질적이다. 적응이 안 된다. 녹음해서 보내주는 건 못 할 것 같다. 하더라도 좀 나중에 해줘야겠다.

잠을 자다 눈을 뜨면 내가 애를 낳았고 애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 못할 때가 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들이 있다. 길진 않지만 스스로 깜짝 놀란다.



2021년 2월 27일  재태주수 30주 생후 50일


오늘은 50일. 오전마다 병원에서 몸무게와 수유량을 문자로 보내주는데 오늘 1020g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이제 정말 크는 일만 남은 것 같다. 내가 억지로 살려서 고생만 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인 것 같다. 다행이다.

이전 15화 가장 긴 적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