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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인 Oct 09. 2021

가장 긴 적막

23주 2일생을 낳았다

2021년 2월 10일   재태주수 27주 생후 33일


갑자기 오후 7시 반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장천공이 다시 생긴 것 같아서 저번과 같은 수술을 하게 되었으니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삼십 분 만에 도착해서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8시 반에 수술이 들어갔다. 저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기가 수술 전부터 혈압이 불안정하고 쇼크가 왔다는 것이다. 수술 직전에 주치의 선생님께서 바쁘게 수술 준비하시면서도 갑자기 인큐베이터 안으로 손을 넣고 아기 손을 잡으라고 하셨다. 아기 손을 잡고 아기에게 힘을 주라고 말하셨다. 이제까지 한 번도 만져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자주 건드리면 위험해서 의료진들도 시간을 정해놓고 최소한으로 만지는데.. 그렇게 급하게 맨손으로 아기 손을 만졌다. 기분 탓인지 아기가 내 손가락을 살짝 잡는 느낌이었는데, 이게 아기와 나의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잡으라고 하신걸 알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아기한테 힘내라고 말해주세요 어머니"라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는데, 입을 열면 울음이 터져 나올까 봐 나는 아무 말도 못 했고 사실 그 자리에서 바닥에 주저앉고 싶은걸 억지로 버티고 서있었다.


저번에 수술한 부위 윗부분에 여러 개의 천공이 생겨서 결국 10cm 정도 잘라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문제가 되었던 탈장도 함께 수술했다. 문제는 혈압약을 최대치 이상으로 쓰고 있는데도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술 후에 아기를 봤다. 이전에 보던 모습과 달랐다. 눈이 퀭하고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정말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처음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 밤이 위기이고 첫 24시간을 잘 지내야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혈압약 스테로이드 승압제 등등 나는 잘 알지도 못 하는 약들을 말 그대로 때려 넣었다. 줄 수 있는 최대치의 두배 이상을 넣고 있다고 하셨다. 남편은 전날 밤을 새서 일하고 함께 병원에 왔는데.. 수술을 기다리는 시간부터 점점 무너지는 게 보였다.


잠이 안 온다.

이 와중에 나는 모유가 끊길까 봐 유축을 하겠다고 시간에 맞춰 유축을 했다. 반복적으로 들리는 기계소리에 정신이 나가는 것 같았다.


새벽 3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병원에 전화했다. '아직은 안 죽었나요?'라고 묻고 싶었는데 입이 안 떨어졌다. 불안정한 상태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물을 것이 없었고 의사 선생님도 해줄 말이 없었다. 하지만 둘 다 전화를 끊지 못하고 아무 말 없이 적막인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죽기 전에 주마등처럼 인생이 흘러간다는데 이때의 적막한 기운도 분명 보일 거다. 차가운 겨울 공기의 새벽. '선생님 제 아이는 아직 안 죽었나요?'를 마음으로 1초에 한 번씩 묻고 있었다. 오전 7시에 다시 전화로 상황을 알려주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전 7시.

혈압도 안정적이고 오줌도 조금 쌌다고 했다. 새벽보다는 나은 상태지만 일시적인 것인지 정말 안정적인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오후 12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쇼크가 오진 않았지만 준쇼크상태로 이약 저약 최대치를 쓰고 있다고 했다.


남편이 결국 무너졌다.

이제까지 무너지는 모습 없이 잘 버텨왔는데..


나는 밤새 마음에 약을 많이 발라놔서 그런지 정신이 놓아지진 않는다. 당사자인 아기가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있는데 부모가 도움도 못주면서 울고 있을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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