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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인 Oct 17. 2021

우리 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23주 2일생을 낳았다

2021년 3월 3일  재태주수 30주 생후 54일


오늘은 면회 날! 일단 아기는 엄청나게 오동통통해졌다. 장갑 끼고 만져도 보고 아주 오랫동안 봤다. 머리도 만져보고 손도 만져보고 여기저기 다 만져봤는데 아기는 내가 만져도 열심히 잠만 자고 있었다. 남편은 괜히 만졌다가 잘못될까 봐 무섭다고 만지지도 못하고 사진만 찍어댔다. 이때까진 기분이 좋았는데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폐가 많이 안 좋다고 한다. 오히려 태어날 때 보다도 더 안 좋아져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지금 호흡을 도와주고 있는 기계가 가장 좋은 기계인데, 이 기계로도 버티지 못하면 더 이상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지난번 장 수술 때 쇼크가 와서 퇴행한다고 했던 게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어쨌든 충분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아지지 않는 모양이다. 교수님 설명 들으면서 우리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교수님보다도 더 아기 상태가 어렵다고 말하던 주치의 선생님이 면회 마지막에 다음 달에 오면 아기를 안을 수 있게 해 주신다고 해서 다음을 기약하는 말에 힘을 얻었다. 폐포는 재 태주수 34주부터 자란다는데 이제 겨우 30주가 되었으니 4주만 버티면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2021년 3월 4일  재태주수 31주 생후 55일


혈액에서 곰팡이균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 약을 끊고 혈전 약도 중단했다. 뇌 초음파에서 전혀 이상소견이 없었고, 배가 너무 불러있어서 (가스가 차있어서) 수유 양을 줄였다고 한다. 너무 걱정된다. 이러다가 수술을 두 번이나 했으니까. 폐가 안 좋아서 인공호흡을 최대치로 쓰고 있다. 덜덜덜 진동하면서 호흡을 도와주는 기계는 중단하는 걸 시도해본다고 한다. 순간순간이 지나가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여전히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오늘 찍어온 영상을 봤는데 그새 또 살쪄서 미슐랭 캐릭터 같다. 이렇게 매일매일 모습이 다르니 남편이 힘들게 일하고도 하루도 안 빠지고 사진을 찍어오고 있다.



2021년 3월 6일  재태주수 31주 생후 56일


어제부터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폐가 더 안 좋아져서 중단하려고 했던 덜덜이로 다시 돌아갔고, 산소 의존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배가 계속 불러있고 너무 몸무게가 빠르게 늘어서 다시 금식에 들어갔다. 남편이 자꾸 무너진다. 그의 말이 맞다. 자꾸 희망을 찾고 싶은데 희망적인 말을 듣지 못하니 마음이 무너진다. 아기 상태에 따라 며칠간 괜찮았다가 무너졌다가를 반복한다.


남편은 자신의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서 폭주할 때가 있다. 테이블을 친다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데 그런 그를 나도 영혼 없이 그냥 쳐다보고만 있다. 나는 나 하나 겨우 정신 붙잡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누굴 위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폭주하는 남편의 불안감을 옆에서 맞고 있을 수도 없었다.


재미 삼아 보러 간 궁합에서 남편과 나의 관계는 천 커플 중에 하나 나올 만큼 좋은 궁합이라고 했고 실제로 지난 11년간 우리는 큰 문제없이 아주 잘 지냈다. 그런데 아기가 잘못된다면 남편과도 같이 지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주 옛날에 본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사망하고 이혼하는 내용이 잠깐 나온다. 아기가 죽는 것도 함께 겪고 극복한 사람들이 왜 이혼을 할까?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 알겠다. 나 하나 감당하기도 벅찬데 상대방이 무너지는 것까지 쳐다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아기가 잘못되면 나는 멀리 가버리고 싶다. 서로 붙어있는 것도 도움이 안 되고 떨어져 있는 것도 걱정이 된다. 우리 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아무리 오래 알고 사이가 좋았어도 모두 의미 없다. 신기루처럼 시간과 함께 날아가버리는거다. 우리는 절대 그 전과 같은 사이로 돌아갈 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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