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기를 매일 쓰지 않고 간격이 점점 늘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걱정을 덜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일은 내 생일이라 사람들에게 선물도 많이 받고 정기 구독한 꽃도 도착해서 괜스레 들떴다. 그런데 저녁에 남편이 찍어온 아기 사진을 보니 배가 파랗고 핏줄이 성성하다. 대책 없이 기분 좋았던 내가 제정신인가 싶다.
2021년 2월 5일 재태주수 27주 생후 28일
아기 건강상태를 물어보려고 전화했다가 주치의 선생님께서 오늘 시간 된다고 하여 일요일에 하기로 했던 면회를 오늘 저녁에 했다. 아기는 자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계속 말해서 그런지 호기심에 눈 뜨고 눈알을 굴렸다. 무슨 소리가 나서 신기했나 보다. 처음 아기가 태어났을 때 24시간, 72시간, 일주일, 한 달 정도가 고비라고 하셨었는데 그 한 달이 되었다. 처음 한 달을 버티면 그다음 한 달도 보통 버텨서 다음번에 만날 땐 만져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하셨다. 한고비 넘긴 기분이라 되려 아기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작게 태어난 아기는 출생 예정일 한두 달 후에 퇴원하게 된다고 했다. 그럼 6~7월에는 집에 올 수 있겠지. 물론 오래 있는 아기들은 일 년도 넘게 있을 수 있다고 했다. 6월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2021년 2월 7일 재태주수 27주 생후 30일
자꾸 아기 배가 불러서 금식을 한다 몸무게는 590g에 태어났는데 아직도 600g대이다. 뱃속에 있으면 지금쯤 1kg은 되어야 한다. 장이 계속 말썽이다. 탈장이 생겨 탈장수술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셨다. 태어난 지 5주 차인데 수술 세 번은 너무 하잖아. 수술 자체 후유증이 심한데 또다시 안정적으로 버티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수술하게 되더라도 2주만이라도 나중에 했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게 너무 일찍 태어난 탓이다. 지금까지 뱃속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유양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 10ml 정도 나온다. 앞으로 4~5개월은 더 나와야 하는데 아기 없이 장시간 유지하는 게 가능할까? 모유 마사지해주시는 분이 모유는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거라 직접 아기를 만지고 아기가 젖을 물면 양이 늘 테니 유축 양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잠도 실컷 자고 하루에 세 시간 간격으로 다섯 번 정도만 유축하라고 하셨다. 모유가 좋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두가 모유를 먹이는 건 아니다. 엄마의 건강상태나 약 복용에 의해 못하는 경우도 있고 유선이 많지 않거나 복직 등의 이유로 짧게 먹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아기는 계속 금식 중이라 내가 모유 유축하는 것이 꼭 아기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서라는 이유보다도 유축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하는 것 같다. 유축을 안 한다면 나는 술을 마시게 될 거고 이렇게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 마시는 술은 독처럼 날 파괴시킬 것 같았다.
이른둥이 아이를 둔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그분의 아주 솔직한 글을 봤다. 자신의 블로그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글이 미숙아 포기라는 키워드라고 하셨다. 본인이 갑자기 미숙아를 낳게 되자 아이를 포기하겠다고 하고 출산 후에 아기를 보러 가지도 않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본인의 자식을 그냥 포기하는 게 불법이라서 그제야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아기를 보러 갔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런 키워드로 자신의 글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그냥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해줬었는데, 그 글을 보고 좀 놀랐다. 사실 그 글을 보기 전까지 아기를 포기한다는 선택이 존재하는지조차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누군가는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누구나 본인이 감당 못할 상황에 처해지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실행에 옮기는 건 또 다른 얘기겠지만.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며 나도 놀라고 주변에서도 안도하는 분위기인데 내가 어떻게 이렇게 나름 침착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그건 내가 사실 이런 걸 계속 목격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27살 때 1년간 KBS1에서 <긴급출동 24시>라는 프로그램에서 조연출을 했었는데, 병원, 경찰서, 소방서 등에서 현장 출동하는 걸 촬영하는 역할이었다. 촬영 기간을 정해놓지 않고 한 곳에 들어가면 수위가 센 사건 다섯 개를 촬영해야 촬영을 접는 식이었다. 당연히 인력이 모자라서 혼자서 한 곳에서 몇 주 동안 밤새 촬영한 적도 있고, 평일에는 사기꾼을 잡는 경찰서 촬영을 갔다가 형사님이 쉬시는 주말에는 주말에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한강 소방시설로 촬영을 가는 식이었다. 누군가의 죽음, 사고, 체포, 범죄 등을 끊임없이 목격하는 일이었다. 이런 방송의 어려운 점은 연출이 안된다는 것이고, 미리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신고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부터 카메라를 켜고 이번 신고가 장난전화인지 단순 사고인지 심각한 범죄인지 끝까지 다 찍어봐야 결론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방송에 나가진 않았지만 내가 촬영하며 목격한 누군가의 인생 하이라이트 장면을 나는 일 년 내내 지켜봤다. 제작사 인건비 비용절감용으로 조연출인 내가 고생은 많이 했지만, 그래도 최악의 순간들을 목격하면서 배운 점이 많았다. 가장 기초적인 배움은 티비에나 나올 것 같은 최악의 순간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패닉에 빠지면 그나마 나은 상황으로 갈 기회를 놓친다. 이번에는 최악의 상황이 나에게 왔을 뿐이다. 모든 게 종결되기 전까진 울고불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