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거래처에 “긴급” 건을 어떻게 이해시킬까?

ASAP, 긴급, 초긴급, 초초 긴급 어떻게 받아들이나!

by 김지혜

네덜란드에 거래처가 있는 한국 업체가 있다.

네덜란드에서 자동차 부품을 수입 판매하는 한국 업체는 네덜란드에 제품 발송을 요청할 때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긴급!!’

한국 업체는 수입 주문을 할 때 ‘긴급’을 강조한다. 혹은 ASAP (as soon as possible, 최대한 빨리)라는 표현을 한다.

처음에는 ASAP (as soon as possible), urgent(긴급) 이런 단어를 메일 내용에 포함하고 전화통화에서도 매번 강조했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대응을 요청했다.

과연 ASAP (as soon as possible), urgent(긴급) 요청 건을 네덜란드 업체는 긴급으로 지원해 줄까?

많은 경우 네덜란드 업체는 그들의 스케줄대로 움직인다.

그럼 이후 한국 업체는 초 긴급으로 해달라고 한다.

직역하면 super urgent다. 그러다 또 그 납기의 속도가 우리가 원하는 만큼 빠르지 않으면 초초 긴급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super ultra urgent라는 애니메이션에서나 쓸 것 같은 용어들이 나온다.

물론 비즈니스 상에서 이런 용어는 쓰지 않는다.

한국 사람이 말하는 ‘긴급’의 의미를 이 네덜란드 업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에린 메이어*의 [컬처 맵]에서는 일정관리의 개념을 <직선적 시간>와 <탄력적 시간>으로 분류하였다.

즉 <직석적 시간> 문화를 가진 국가, 독일, 네덜란드, 미국 일본은 생산과 업무와 개인 약속들이 철저하게 예정대로 움직인다.

<탄력적 시간> 문화를 가진 국가는 업무들은 유동적이며 기회가 발생하면 업무 순서는 수시로 바뀐다. 상황에 따라 융통성과 탄력성이 강조된다.


우리가 긴급으로 요청한다는 말에 네덜란드 업체는 기존에 짜인 스케줄을 바꿔가며 우리를 긴급으로 지원하지는 않는다.

그럼 정말 긴급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독일 엔지니어링 업체 대표 마이클이 한국의 자동차 업체 방문하였다.

한국에서 본인이 개발한 시스템을 시연하기 위해 세미나 전날 장비를 세팅하고 있었다. 세팅을 마치고 소프트웨어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은 제품 데모 세미나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 시간을 맞추려면 오늘 세팅이 완료되어야 한다.

독일에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지원을 해줘야 할 상황이다.

시차로 인해서 아직 독일 업무 시간이 되려면 오후 4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마이클이 본인이 설비를 세팅하는 동안 나에게 회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메일을 좀 작성해 달라고 했다.

관련 요구 사항을 설명하고 최대한 빠른 대응을 요청하며 As soon as possible(ASAP)라는 표현을 적었다.

메일 발송 전 마이클에게 작성한 메일에 빠진 내용이 없는지 확인했다.

마이클은 그 메일을 보더니 놀라며 ASAP는 빼라고 했다. 그런 말은 무례하다고 했다.

나는 회사 사장인 마이클 대신 메일을 전달하는 입장이고 마이클은 회사 대표이사다. 아래 직원에게 메일 보내서 긴급 지원을 요청하는 것인데 ASAP를 왜 빼라는 것인지, 왜 무례하다고 여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이클이 요구한 대로 수정한 메일을 보냈다.

오후 독일 업무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마이클은 그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거의 30분 이상을 관련 건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직선적 시간 문화를 가진 대표적 국가인 독일에서는 사장이든 직원이든 스케줄에 맞춰 업무를 하고 각자의 정해진 일정과 일들이 있다. 이를 배제하고 급한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필요했다. 내가 사장이라고 해서 ‘일단 이것부터 해’라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이미 정해진 일정과 주제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나 논의는 무례함을 뜻한다. 대표적인 국가로 독일, 스위스 등 스칸디나비아와 게르만 국가, 북미와 일본이 있다.


이후 한국 대리점 담당자는 독일을 방문하기 위해 마이클과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

마이클은 우리가 제안한 몇 개의 날짜 중 어떤 날은 미용실 예약이 되어 있어서 안 된다는 말을 했다.

‘아니 우리가 한국에서 독일까지 가는데 미용실 가는 게 중요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선적 시간 문화인 독일은 생산과 업무와 개인 약속들이 철저하게 예정대로 움직인다.

그게 식당이든, 미용실이든 아마도 일정을 변경한다는 건 큰 사정이 없는 한 무례한 행동일 수 있다.

이탈리아에 설비 검수를 간 한국 고객이 예정된 식당의 메뉴를 듣고 다른 식당으로 바꿔달라는 말에 너무나 황당하고 곤란해하는 이탈리아 담당자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예약비를 날리고, 당장 예약이 되어 있지 않는 괜찮은 식당을 찾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한국의 갑질 고객은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시계가 있다.

그럼에도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간에 경험하는 시간은 다르다.


외국 업체와 거래를 한다면 상대가 인식하는 시간의 의미는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자.

그렇다면 단일 시간 문화의 국가에 긴급 발송을 부탁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직선적 시간 문화 국가와 업무를 한다면 마이클이 부하직원에게 한 것과 같이 “긴급” 한 업무 진행이 필요할 경우 납득할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납기가 지연되면 어떤 영향이 있고, 문제의 정도가 얼마나 큰지 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한다.

독일 담당자 또한 다른 문화의 사람이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다. 우리가 긴급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도와줄 것이다.

그래야 독일이나 네덜란드 인들이 느끼는 기존의 예정되었던 스케줄을 변경하고 우선순위를 바꿀 근거가 충분한지 검토할 수 있다.

아마도 긴급 상황을 이해한 독일이나 네덜란드 담당자는 그 회사의 관련 부서를 설득해 줄 것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쉽게 ‘느리다’라고 판단하는 국가의 거래처가 어쩌면 가장 유연하게 스케줄을 변경해주고 지원해주는 탄력적 문화일 수도 있다.

또한 우리가 융통성이 없다고 느끼는 국가의 문화는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면 누구보다 우리를 위해 융통성을 발휘해 줄 수도 있다.

각 국가의 문화는 다를 수 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결국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인간적으로 접근하고 사정을 설명한다면 그 담당자는 적어도 다시 한번 검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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