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유발자 고맥락 문화 & 저맥락 문화 차이
브라이언은 한국에 1년 정도 주재원으로 온 미국인 엔지니어였다.
태국인 아내와 함께 한국에 온 브라이언은 가끔 나에게 메시지로 이것 저것 한국에 대해서 물어보곤 했었다.
태국인 아내가 태국식당에 가고 싶어 하면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찾아주고 이것 저것 물어보면 꾸준히 검색해서 알려주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브라이언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아내가 귀에서 웅~하고 소리가 나서 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처방을 받았는데 낮질 않는다고 함께 병원에 가서 통역을 도와 달라고 부탁 했다.
브라이언과 함께 그 아내를 데리고 인근 동네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큰 병은 아니었고 약을 먹고 쉬면 나을 수 있는 병이었다.
어느날 브라이언이 근무하는 그 회사의 회의 통역에 참여 하게 되었다.
일본인과 미국인 그리고 재미 교포 한 명을 포함한 8명이 함께 고객사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침 일찍 회의시간이 잡혀서 출근시간을 피하느라 너무 일찍 고객사에 도착한 우리는 인근 빵집으로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며 사전 회의를 하기로 했다.
다들 커피를 시키고 빵을 먹을 사람들은 빵을 골랐다.
함께 회의를 참여한 한국계 미국인 한 분이 나에게 커피를 마시겠냐고 물어봤다.
몇 명이 빵을 고르고 있었고 브라이언도 빵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브라이언이 빵을 고르며 나에게 물었다
“Have you had breakfast? (아침 먹었니?)
난 아침을 못 먹었다고 했다. 브라이언은 빵을 여러 개 골랐다.
일본인 두 명과 브라이언이 그렇게 빵을 고르는걸 보고 커피와 빵을 아침으로 함께 먹으려는 구나 생각 했었다.
그리고는 자리로 와서 우리는 회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고른 빵을 나누어 먹을 줄 알았는데 다들 그냥 자기 앞에만 두고 열심히 먹는다.
서로 권하지도 않고 다들 자기가 산 빵은 혼자 먹는다.
심지어 나한테 아침을 먹었냐고 물어보던 브라이언은 빵을 세 개나 샀지만 나에게 먹어보라는 말도 없이 혼자서 다 먹는다. .
사실 난 몇 개의 빵을 사는 브라이언을 보고 그리고 아침을 먹었냐고 묻길래 같이 먹을 빵을 사는 줄 알았다.
그 빵이 나와 나눠먹을 빵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땐 이미 회의가 시작되어 내 빵을 다시 사러 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상황을 살펴보니 커피도 각자 다 시키고 자기가 먹을 빵도 자기가 시키는 거였다.
그나마 나에게 커피를 마시겠냐고 물어보고 커피를 사준 사람은 한국문화를 아는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브라이언에게 내심 무지 섭섭했다.

회의 내내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와이프가 아프다고 해서 한걸음에 달려가 병원에 데리고 가고 이런 저런 물어보는 것도 찾아서 다 알려주고 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빵 하나에 나는 왜 그렇게 섭섭했던 것일까? 왜 브라이언은 나랑 빵을 나눠 먹지 않았을까?
한국의 문화는 의사를 묻지만 ‘먹었어요’, ‘괜찮아요’ 라는 답이 상대에게 나왔다고 해서 나 혼자 빵을 먹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적어도 먹어보라고 권하거나 그래도 안 먹겠다는 대답을 들어야 그제서야 마음 편하게 혼자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다 같이 먹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아예 나도 안 먹고 참고 있었을 것이다.
한국은 고맥락 문화* 다. 즉 메시지의 행간을 통해 표현되고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즉 눈치껏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브라이언은 내게 아침을 먹었냐고 물었고 난 안 먹었다고 분명히 답했다.
그 상황에서 한국적 고맥락 문화의 사고라면 내가 안 먹었다고 하면 브라이언은 그 대답의 의미를 읽어 내야 한다.
‘니가 아침을 안 먹었다는 건 너도 배가 고프다는 거구나, 나에게 안 먹었다고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건 너도 빵을 먹겠다는 의미이구나, 그럼 내가 빵을 사서 너랑 나눠 먹어야 하는 거구나, 혹시 거절하면 그래도 배가 고플 테니 한번은 더 권해 봐야 하는 거구!’
고맥락 문화에 사는 우리는 이런 해석을 순식간에 다 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저맥락 문화의 미국인 브라이언은 “내 빵도 하나 사줘” 라고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지 않은 내 빵을 사와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해본 적 없을 것이다.
내가 분명히 ‘내 빵도 하나 사줘’라고 했으면 브라이언은 기꺼이 사줬을 것이다.
나는 통역 일을 하면서 이런 저 맥락문화와 고 맥락문화의 차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의 차이를 이해한다고 내가 그 문화를 모두 수용할 준비가 잘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저맥락을 이해하고만 있을 뿐, 내 사고는 여전히 고맥락 문화의 사고에 머물러 있고 다른 문화의 사고로 즉시 전환되지는 못했다.
내가 그 문화에서 지속적으로 노출 되거나 생활하지 않는 한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문화는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화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는 꼭 필요하다.
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결국 상대에 대한 섭섭함은 갈등과 미움으로 이어지기 쉬워진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내 마음과 상황을 전혀 이해 하지 못할 것이다.
상대 문화를 이해 한다면 적어도 상대를 오해하거나 내 기준에 미워하거나 갈등 유발은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을 크리스토퍼 얼리(Christopher Earley)는 문화 지능이라고 정의 했다.
문화의 차이에 대한 이해는 상대를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에 영향을 준다.
내가 가진 문화적 배경은 상대의 행동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크리스토퍼 얼리(Christopher Earley)가 정의 하는 문화 지능(CI)에는 세 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
인지적 요소(head)
신체적 요소(body)
감정적 요소(Heart)
나는 이 브라이언 빵 사건을 인지적 요소(head), 즉 머리로는 이해 한다.
미국인은 저맥락 국가라 내가 확실한 의사 표현을 하지 않으면 브라이언은 빵을 나눠먹어야 한다는 것을 모를 수 있다.
신체적 요소(Body)는 각자의 빵을 사서 알아서 계산해서 먹는 브라이언의 문화를 이해 했다면 굳이 브라이언이 빵을 나눠 먹을 것이라는 기대 없이 내가 먹을 빵을 알아서 사서 먹었을 것이다.
다음은 감정적 요소(heart)로 문화적 차이를 인지(head)했지만 그에 따라 행동(body)하지 못한 나는 브라이언의 행동에 섭섭한 마음(heart)이 들었다.
문화의 차이는 이렇듯 우리의 삶과 사회 생활에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 한다.
문화 차이를 이해하는 문화 지능(Cultural Intelligence, CQ)은 외국인과 업무를 하는데 있어상당히 중요하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갈등을 막고 오해를 막기 위해서는 글로벌시대의 기업과 개인에게 필수적인 역량이다.
문화 충격을 받지 않지 위해서는 문화를 이해 하는 것이 우선이다. 다른 문화에 대한 학습과 경험과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문화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 문화를 받아 들이는 것이 꼭 쉬운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그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내가 익숙한 문화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그에 따라 즉각적인 감정으로 이어진다.
나는 뒤끝이 만리 장성인지 아님 문화지능이 부족한지 아직도 그때 빵을 나누어 먹지 않은 브라이언이 섭섭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경험으로 다시 브라이언을 만난다면 브라이언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브라이언, 내빵도 하나 사줘, 팥빵으로!”
<참조>
미국의 인류학자 홀(Hall, E. T.)이 1976년 저서 《문화를 넘어서(beyond culture)》고맥락·저맥락 문화: 문화에 따라 맥락이나 상황이 의사소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용어.
크리스토퍼 얼리(Christopher Earley)문화지능이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반작용과 상호작용의 동기를 느끼며 실제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능력.
https://blog.naver.com/janekim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