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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어느 특별한 아침
by
Janet M
Nov 5. 2019
보드라운 솜사탕 같은 미소를 띤 채 머리를 긁적이며,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요, 라고 말하는 유의 사람들을 좋아한다.
숨 쉬는 일이 내가 의식적으로 행하는 일은 아니지만,
단 몇 분이라도 신경을 써서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는 일도 필요하다.
아주 짜릿한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엄청나게 길게 늘어선 줄 사이사이에도, 에이 그냥 다음에 타지 뭐, 하며 빼곡한 줄을 이탈하는 사람들도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철저한 채식주의자라 해도 제가 꼭 고기를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라며 가끔은 아주 맛있게 고기를 잘근잘근 씹어 먹는 사람이 더 매력적이다.
머리를 말리다가 종종 보이는 흰 머리카락 한 가닥을 뽑아내기 위해 검은 머리를 고르고 고르는 일,
이마에 난 뾰루지 하나 때문에 거울 앞에 더 오래 서있는 일,
구멍 나지 않은 양말 한 짝을 찾기 위해 양말 서랍 한쪽을 다 헤집어내는 일,
어쩌면 우리를 한 번 더 웃게 하고 한 뼘 더 활기차게 하는 것은 살면서 '어쩌다가' 그렇게 된 모자람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문자 한 통이면 될 일을 작고 흰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전해 보기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가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사람처럼 반갑게 들어오기를.
누군가를 초대해 뭔가 대단한 음식을 대접할 사람처럼 양손 가득 장을 보고서는 냉장고를 꽉 채워 넣는 하루이기를.
때론 뒤에서 그 사람이 점이 될 때까지 손을 흔들어 배웅해주는 사람이기를,
비상등을 켜고 길 가에 서서 단지 바람이 좋아서라고,
달이 환해서라고, 노을이 예뻐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쯤은 아침도 점심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쯤에 일어나 아침밥도 점심밥도 아닌 어중간한 브런치를 먹으며, 어쩌다가 이렇게 됐네 하며 웃음 짓는 사람이기를.
그렇게 태연한 척 그 시간을 즐기는 행복한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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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간호사. 세 아이의 엄마. 글쓰고 그림그리는 사람. 지은 책으로는 [그림그리는 간호사의 런던스케치], [엄마가 꾸며주는 캐릭터 식판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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