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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t M Nov 14. 2019

관계에 관하여

습관에 관한 고찰

어느 날 설거지를 하려는데 싱크대 한 쪽 구석에 까만 콩 같은 무언가가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릇들을 씻는데 날아온 물세례를 받고 그 콩만 한 것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 콩의 정체는 달팽이였다.

물을 흘려버릴까 밖에 가져다놓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이 작은 생명체의 생태에 대한 의문이 들어

잠시 곁에 두고 보기로 결심한 나는, 조금 어설프지만 작은 플라스틱 그릇과 냉장고에서 꺼낸 상추 잎 몇 장으로 달팽이의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인터넷으로 ‘달팽이 키우는 법’에 대해서도 검색해보았다.     


- 작은 플라스틱 통에 화단용 흙이나 달팽이 전용 매트(코코피트cocopeat)를 깔아주세요.

- 건조하지 않도록 흙이나 매트를 물로 축여주시고 습도 유지를 위해 간간히 물을 분무해주세요.

- 달팽이는 상추나 오이, 호박 같은 채소를 좋아합니다. 낙엽 조각을 뿌려주면 그 밑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넣어주면 훌륭한 놀잇감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구나.

그렇게 이 작은 생명체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이 작은 달팽이는 평소에는 전혀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잠시 집을 비우고 돌아올 때나 자고 일어나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갉아먹은 상추 잎 흔적들과 이곳저곳에 배설물을 묻혀놓음으로써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아주 가끔씩 말라버린 물을 채워 넣어주거나 신선한 상추나 오이 조각을 넣어줌으로써 이 생명체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가끔씩 달팽이가 보이지 않을 때면 상추 잎을 들춰보면서 일부러 생사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관계에 대한 고찰.

나와 하루를 공유하는 무언가의 혹은 누군가의 존재에 대한 의문들에 대해.

하물며 어느 날 갑자기 내 옆에 나타난 이 작은 생명체 한 마리조차도 내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숨기기 위해 자기 몸집의 몇 배나 되는 커다란 상추 잎 속으로 몸을 숨겼을지도 모를 이 달팽이를 찾기 위해 상추 잎을 펄럭 들춰보고, 이리저기 움직이는 더듬이 같은 눈이 재미있어 손으로 콕 건드려보기도 하고, 미끌거리는 표면이 신기해 손가락으로 번쩍 집어 올려 손바닥 위에 올려보기도 한 나 때문에 이 작은 생명체는 얼마나 큰 상처와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관계가 속박이 되고 집착이 되고 상처가 되면 좋은 사이가 될 수 없는데, 과연 이 달팽이는 나로 인해 행복할까, 아님 매일 매일이 두렵고 불안할까.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달팽이 한 마리처럼 그것의 존재 자체를 잊은 채

무작정 우리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가두며 그에 맞춰지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는 그 관계가 틀어졌을 때 나와는 맞지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밀어내거나 또 다른 존재를 찾아 훌쩍 떠나버리지는 않았는가.


   

지나친 집착과 속박, 그 속에 인간관계의 모든 사랑과 증오가 뒤섞여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듭처럼 얽힌 관계들 속에서 괴로워하거나 혹은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둘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을 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 사이 사람, 관계 속 관계.     


언뜻 보면 이런 관계들은 몇 번에 걸쳐 꽉 묶인 단단한 매듭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단 한 번의 절단만으로 모두가 풀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관계이기도 하다.     




완전하지 않다면 유연함을 늘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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