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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t M Nov 16. 2019

봄이 올 것처럼

하루에게 보내는 편지

벚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할 무렵, 길을 걷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장면 하나가 있었다.

산더미 같은 짐을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의 모습 뒤로 엄청나게 풍성한 나무들이 곧 초록을 왈칵하고 토해낼 것 같이 부대끼던 모습.


노인은 알고 있었을까.

등 뒤로 곧 쏟아질 것 같은 봄 아래에서, 살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진하게 젖어 본 적이 있는지,

마음 놓고 그 자리에 서서 계절이 사력을 다해 흔들리는 때에 한 번만 몸을 일으켜 돌아봐달라고 애원하던 울부짖음을 들어본 적 있는지.

눈부시게 푸른 초록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도망치듯 사라져버리는 하늘 아래에서

무엇을 잃었고 얻었는지를 셈하는 대신

흩날리는 초록의 뒤로 점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마법사의 광장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글자였다는 사실에 웃음 지을 수 있는 시간이 당신에게는 있는 것인지.

     

의도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늘 경쟁해야 하고, 서로를 끊임없이 빼앗으며 달려야 한다.

삶은 분명히 고통의 연속이다. 원하지 않아도 주름지고 쇠약해지며, 삶이 파놓은 수많은 구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발을 헛디뎌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도 결국 빠져나와야 하는 것 또한 나 자신이다.

그럼에도 틈틈이 초록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


정신없이 버둥대다가 놓쳐버리는 초록의 슬픔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허둥지둥하다가 하나둘씩 떨어지는 초록을 보는 일은,

쏟아질 듯 넘치는 초록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슬픈 것이다.     


봄이었기 때문에, 넘치는 초록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했던 날들이 있었다.

반면에, 봄이었으나 우울했던 그런 날들도 있었다.

한 생명체를 넘치도록 활기차게 만드는 것도 봄이었고,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의 무기력함을 주는 것 또한 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봄’을 손꼽아 기다린다.


뭔가를 잔뜩 품고 기대하며 도전했던 수많은 봄날이었으나 돌아보니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계절이 주는 관대함은 그만큼 젊은 날의 과오를 범하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를 낭비한 것이 아니라 조금씩 성장한 것이다.     


차디찬 계절 뒤에 오는 따사로운 낭만을 위해 무릅쓰고 살아지는 것.

그것을 나는 초록의 인생이라 부르고 싶다.

부디, 삶의 고난과 짐들을 저마다의 리어카에 잔뜩 싣고는, 고개를 숙인 채 초록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곧 봄이 올 것처럼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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