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 라이프

내 인생의 결정적 5분

by Janet M


커다란 산을 하나 넘은 것 같은데,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눈앞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큰 산이 나타났다.

아이가 울면 그저 품에 안고 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모유수유.


모두가 잠든 새벽 1시,

벽돌처럼 단단하게 부풀어오는 가슴 통증에 나는 또 한 번 절규했다.

생각보다 많이 틀린 시험 성적표를 받은 것처럼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부운 두 발과 욱신거리는 손목 통증,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

내 눈물은 비단 신체적인 변화에 대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변한 내 모습에 대한 우울감과 병원 창문 너머로 나만 빼고 흐르는 일상들,

어느 것 하나를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이유로 계속 눈물이 났다.

아기는 정확히 2시간마다 젖을 찾아댔고,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으며 짜고, 짜고, 또 짜고.

그렇게 영혼까지 끌어 모아 나온 40ml의 초유.


고작 한 모금도 안 되는 노오란 초유 속에 그렇게 엄청난 크기의 애환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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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유산 끝에 겨우 얻은 아기라고 그녀는 말했다.

결혼한 지 8년이나 지났지만, 세 번의 아픔을 딛고 서른아홉 살의 여름에야 비로소 예쁜 딸을 얻게 된 그녀는

이미 노산이었던 터라 온몸의 통증을 호소하며 유난히 힘들어했다.

그녀의 아기는 출산의 과정에서 쇄골에 금이 가 신생아 집중 치료실을 계속 들락날락했다.

그래서 많은 산모들이 수유를 하러 들어오는 동안

그녀는 구석에 혼자 앉아 계속 유축기를 돌려야 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첫 아이를 얻은 때는 서른 한 살이었다.

몸의 회복력은 빨랐고, 체중도 금방 빠졌다.

같은 또래의 산모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다.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은 마치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처럼 마음 속 깊은 전우애 같은 것이 있어

짧은 시간에 상대의 인생을 송두리째 공유할 정도의 끈끈함을 가져다주었다.


힘들게 첫 아이를 낳게 된 서른아홉의 그녀는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나 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유산을 반복하고 남들 다 갖는 아이도 하나 못 갖는다며 누군가에게 푸념을 하는 시어머니의 통화 소리를 우연히 듣고 나서 특히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겨우 얻게 된 아기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는 사실은 그녀를 더욱 주눅 들게 했고,

시어머니는 축하한다는 말 대신에 둘째는 아들을 낳기를 바란다고 했단다.

우리는 그건 요즘 시대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같이 분개했던 것 같다.


대단한 일을 한 거라고, 어느 누구보다도 위대한 엄마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을 때쯤

그녀의 촉촉한 눈가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렸고

우리는 마음속으로 모두 울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는 아기를 보며 당황해했고,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매다가 혹시 쉬를 했는지 모른다며 기저귀를 벗기고는

다시 채우는 것이 서툴러 머리에 맺힌 땀방울을 보며 서로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엄마가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깔깔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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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에서의 14일이 그렇게 흘러갔었나보다.






아직 몸조리도 다 안된 것 같은데,

기저귀 갈아주기도 여전히 서툴고

울면 등 뒤에서 땀부터 나는데,

엊그제 배웠던 신생아 목욕법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고

매끼마다 먹었던 미역국이 질린다며 너스레도 떨었었는데

집에 가면 그렇게 밥 차려 줄 사람도 없겠지.

동기들 하나둘씩 떠나고 이제 내가 조리원을 퇴소할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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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퇴소를 준비해주는 모습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나는

아쉬움 반 설렘 반 두근두근 가슴 안고

서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나는, 진짜 엄마가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다 그렇게 엄마가 된다.

진짜 엄마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울 만큼 참으로 어설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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