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결정적 5분
나의 임신 소식을 처음 들은 우리 엄마의 목소리는 기쁨보다는 걱정에 가까웠다.
난 그 이유를 점차 깨닫게 되었다.
한 여자가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오는 숱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든 걸 마치 당연하다는 듯 혼자서 끙끙 앓고, 치유하고,
그 모든 고통을 무한 반복하며 이겨내야한다는 걸 딸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사회는, 결혼과 임신, 출산 문제를 여자로하여금 당연시하게 여기고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 에세이를 쓰기 전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여자로서의 삶은 정해진 것이 없다고.
온전히 당신의 선택이라고 말이다.
나는 아무런 준비없이 엄마가 되었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남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쉬어가면 나태해질까봐, 잠시 숨을 고르면 아예 놓아버리고 싶을까봐,
돌아볼 겨를 없는 치열함으로 버텨야 하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엄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때는 임신 9개월이었다.
불룩한 배를 안고 동네를 산책하는데
지나는 가게들의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갑작스러운 만감이 교차했다.
봄기운이 만연했던 5월, 내 옷차림은
거리의 봄꽃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가벼운 꽃무늬 원피스였지만,
내 몸은 마치 물에 푸욱 젖은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하루 종일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지,
늘 먹던 밥과 국인데 왜 헛구역질이 나는지,
기분은 좋다가도 갑자기 싱숭생숭해지고
평소에 먹지도 않던 음식이 새벽에 왜 갑자기 먹고 싶어 미치겠는건지.
배는 점점 불러와 맞는 바지는 임부복뿐인데, 쇼윈도에 걸린 예쁜 옷은 너무 입고 싶고
매일 늘어나는 체중에 괜한 걱정근심으로 밤 지새우던 날들이었다.
결혼 후 바로 아기가 생겼고, 이제 사람들은 나를 산모 혹은 예비엄마라고 불렀다.
엄마가 된다는 것.
단 한번도 없었다,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아이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입체 초음파에서 보여주었던 그 얼굴 모양의 아기가 나올지,
진통은 언제쯤 오는 것인지,
그 고통의 크기는 얼마 만큼이며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것인지.
아마도 그 무게는 비단 불룩해진 배의 무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무게는 함부로 상상되는 크기가 아니어서
때로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격한 감정들을 담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수많은 감정의 무게들을 안고서 너를 기다리는 270일의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함의 나날들이었다.
배를 발로 차며 이리저리 뒤척이고 꼬물대던 너를 쓰다듬으며
손인지 발인지 모를 배꼽 언저리에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대고
잔잔하고 편안한 음악 너머로 사랑한다, 사랑한다 속삭이던 날들.
함께 음악을 듣고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산책을 하고 함께 울고 웃었던
너와의 애틋했던 270일의 교감.
아이가 생긴다는 건 어쩌면 우리가 흔히 따지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내가 '엄마'라는 이름을 처음 갖게 되면서 알게 된 진리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그 어떠한 신념도, 의학적인 기술도 결정지을 수는 없다.
아이는 그저 그 모든 걸 초월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일 뿐.
그 이후에도 아이는 항상 우리가 원하는 걸, 우리가 원하는 때에 해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 단지 그것 뿐이다.
아이를 품는 270일의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모성'이라는 단어로 와닿는다.
X, O의 확실한 선택이 없었을지라도 엄마인 우리가 엄마가 되는 것은 바로 그 시간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