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결정적 5분
예정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즈음,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처럼 집안을 서성이며 허드렛일을 하다가 ‘이슬’이라는 것이 나왔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신랑에게 곧 아기가 나올 것 같다고 연락했다.
신랑은 곧바로 일을 중단하고 휴가를 냈고, 이 사실은 곧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이튿날, 아기는 나올 생각이 없는 듯 태동이 그대로였고,
아기를 낳았냐는 전화가 한두 통씩 걸려오기 시작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아기는 아직 뱃속에 있었고 전화벨만이 요란하게 울려댈 뿐이었다.
정말,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엄마에게서 외할머니로, 외할머니에서 이모에게로,
이모에게서 삼촌을 비롯해 내가 아는 대부분의 지인들에게 ‘아직 안 낳았데’라는 소식이 점차 완성될 때쯤
비로소 진진통이 찾아왔다.
5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차이로.
정말이지, 이런 밀당의 고수는 없을 것이다.
남산만한 배를 끌어안고 잠을 청해보기 위해 이쪽저쪽으로 뒤척이던 수많은 날들을 보내며
뭔가 진통 비슷한 알싸한 느낌이 올 때마다 내 심장은 길 잃은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수많은 출산 후기들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수십 번씩 분만실을 왔다 갔다 했다.
정기검진 때마다 찾았던 진료실 앞에 붙은 여러 가지 분만의 종류들,
가령 그네 모양의 의자라던가 회전이 자유로운 의자 등의 사진 속으로 들어가
그 위에 앉아있는 상상을 하다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드디어 그 날이라니.
눈앞에 보이는 ‘분만실’이라는 세 글자와
모니터에 표시된 분만중인 사람들의 이름.
촌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표시된 그 글자판을 보고 있자니
순간 머리가 띵 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마치 뇌에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처럼,
이 느낌은 아직도 ‘분만실’이라는 세 글자를 보면 생생하게 되살아나곤 한다.
참으로 원초적이면서도 수동적인 분만 준비의 과정들을 거치고 나니
진통의 간격과 강도는 처음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의료진들은 수시로 방을 들락날락하며 내 몸 상태를 확인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아기를 생각하는 일 뿐이었다.
아기는 엄마가 느끼는 고통보다 몇 배나 더 크게 느낀다는 그 말 하나를 가슴에 새기며 버텨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고통에
그동안 연습했던 라마즈 호흡법은 개나 갖다 주고,
우아하게 출산하겠다던 의지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살아왔던 짧은 인생이 뇌리에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순간 들리는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
고통은 곧 서둘러 썰물처럼 사라지고
그동안의 설움과 안도와 한숨이 뒤섞인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릴 때,
모든 공포와 출산의 고통은
가슴 위에 놓여지는 작고 따뜻한 아기에 의해
눈 녹듯 사라진다, 참 아이러니.
손대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이 작은 아기가
눈도 뜨지 못한 채 입을 오물거리며 젖을 찾기 시작한다.
놀라울 정도로 본능에 충실한 이 작은 생명체 앞에서 아직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나는,
그저 분만실의 희미한 불빛 아래 기진맥진하게 누운 채
출산의 후처치가 얼른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알지 못했다.
이것은 고작 엄마로서의 내 삶에, 단지 프롤로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