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빠의 퇴근시간에 맞춰 개장하던
놀이동산이 하나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애.비.랜.드
엄마는 해줄 수 없던 목마 태워주기나
안고 공중 점프, 빙빙 돌리기, 비행기 태워 주기등
힘센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건
몸으로 놀아주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만 들어도
환호성을 질렀고,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달려가
아빠에게 매달렸다.
피곤했을 법도 한데,
아빠는 늘 그 작은 몸들을 번쩍 들어 올렸다.
거실은 순식간에 놀이기구가 있는 공간으로 변했다. 소파는 미끄럼틀이 되었고,
아빠의 팔은 롤러코스터가 되었으며,
아이의 웃음소리는 축제 같았다.
아이가 커가는 시간들은
우리의 시간과는 다르게 흐르는 듯
하루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갔다.
키는 어느새 내 턱을 넘어섰고
한숨에 들어 올리기에는 꽤 무거워졌다.
반면에 부모인 우리는 점점 작아지고 약해졌다.
매일 저녁 문을 열던 애비랜드는
어느 순간 점점 한산해지기 시작했다.
아빠의 팔은 예전처럼 쉽게
아이를 들어 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무거워서 안 되겠네.”
그 말속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아이 역시 더 이상 목마를 태워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자기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아들과
아빠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가끔 낯설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웃음소리로 가득 찼던 거실에,
이제는 조용하고 진지한 대화가 흐른다.
진로 이야기,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
그 대화의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이는 더 이상 놀이기구를 타듯 웃지 않지만,
대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끔 친정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 오늘날에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작아진 아빠의 등 뒤를 한참이나 바라본다.
사실,
우리 집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었다는 느낌은
엄마가 차려주는 뜨신 밥보다도
언제든 올라탈 수 있던
아빠의 넓은 등 때문이었다.
아빠의 등 위에서라면 나는
뭐든 볼 수 있고
뭐든 무서울 것이 없는 강한 존재였다.
어른이 되고서 가장 슬픈 일 중의 하나는 바로
작아진 아빠의 등을 보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지나갔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동시에 그 시간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릴 수 없다. 대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을 함께 나누는 부모가 되어간다.
놀이기구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또 다른 형태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어쩌면 애비랜드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다시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