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의 가치
내가 오래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는 단연 요가다. 요가를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운동으로 했던 시기는 30대 초반이었다. 그 이후로 어쩌다 저쩌다 요가를 쉬어도 '다시 요가 좀 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시작하곤 했다. 이렇듯 나는 요가의 세계로 다시 돌아와서 글을 쓰고 있다. 나랑 잘 맞는 것들은 몸과 마음이 기억하고 결국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아무리 오래 쉼을 가져도 자연스럽게 내가 다시 찾는 것들이 나를 만드는 것 같다.
처음에는 요가가 운동이 될까 싶었다. 요가를 운동으로 접하기 전까지는, '좀 빡센 스트레칭'같은 느낌이 강했다.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요가를 하면서 웬만한 근력운동 보다 힘이 더 든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요가를 안 해본 사람들이 그게 운동이 되냐고 물어보는데, 요가 운동 진짜 완전 된다.
요가는 명상도 같이 할 수 있어 좋다. 1타 2피의 느낌 참 괜찮다. 명상이 좋은 건 알고 있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놓치곤 했다. 하지만 요가를 가는 날엔 명상은 덤으로 할 수 있는 루틴을 만들 수 있었다. 수업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서 하는 명상이 그랬다. 이렇게 명상과 요가를 같이 하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챙기는 기분이 든다. 이 둘을 조화롭게 돌보는 느낌이라 삶의 밸런스를 잘 맞추고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
요가와 명상의 조합은 단순히 운동을 하는 것을 넘어선다. 마음이 확 치유된다기보다는 1도씩 좋은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다. 하고 나서 불편함을 느낀 기억이 없는 것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이런 기분 좋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는 느낌으로, 나도 모르게 회복탁련성이 차츰 높아지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같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확정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같다'라는 기분들이 모여 모여 총체적인 확신을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것들이라도 늘 좋음의 방향으로 가지만은 않은데, 요가와 명상은 늘 하기만 하면 좋은 방향으로 키가 조정되었다.
요가 시간은 몰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같이 수련하는 사람들의 고요한 에너지 덕분일까. 잡념은 서서히 옅어지더니 나 역시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의 기운이 생성된다. 나는 힘든 동작이 싫은데 또 좋다. 어려운 동작을 할 때, 더 치열하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몰입 끝에 느끼는 꽉 차오르는 감정이 좋다. 채울 수 있는 만큼 다 채워서 느껴지는 충만함에는 공허감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동작보다 한 단계 어려운 동작은 온 집중을 요한다. 그 동작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더 그렇다. 그 과정 중에 내가 들고 온 컬러풀한 잡념은 흑백으로 바뀌더니 아주 사라진다. 힘드면 힘들수록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숨도 못 쉬겠는데 잡념이 낄 틈이 없다. 동작을 유지하는데 온 신경을 쓴다. 영혼은커녕, 매트 위에서 움직이는 몸만 있을 뿐이다.
끝이 있는 몰입의 시간 후에 찾아오는 충만함은 나를 평온하게 한다. 몸은 약간 지쳤는데, 마음이 고요하다. 몰입할 때는 내가 그러한 상태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수련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어김없이 '아 내가 완전 몰입했었구나.'란 걸 깨닫는다. 몰입 뒤에 오는 기분은 늘 좋았다. 1평도 안 되는 매트 위는 좁지만, 평온함의 깊이는 끝이 없다. 힘든 동작이 싫은데 좋은 이유이다.
요가는 평가의 영역이 아니다. 내 몸이 할 수 있는 곳에서 머무르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관찰하는 것이다. 평가를 내려놓고 오늘의 몸에 집중하는 편이, 나에게 맞는 요가의 동작을 더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다. 수련을 하면서는 잘하고 못하고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감정과도 멀어진다. '이 동작이 안돼서 짜증나'라고 감정을 끌어오기보다는 '어제는 이만큼 됐는데 오늘은 안되네.'라며 뒤에서 한 발자국 나를 관찰하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과 멀어지니, 평가의 자리에 나 자신에게 몰입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요가의 세계에서 연습한 의식을 일상생활에도 적용하니, 괜한 불필요한 감정에서도 해방되는 느낌이다.
물론 안될 때도 있다. 관찰과 감정이 분리가 안 되는 상황이 오고 좋지 않은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미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내뱉은 상태라면,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나 사람 맞네. 잘 안돼서 나 지금 짜증 났네.' 하며 뒤에서 다시 내 감정을 바라본다. 또 잘 안되더라도 감정을 떠나 언제라도 관찰의 문장으로 문장을 끝낼 수 있다. '아놔 짜증나.' 감정만을 내뱉었다가도 다시 '아 또 잘 안돼서 나 진짜 짜증 났네.'하고 뒤에서 내 감정을 또 바라볼 수 있다. 쳇바퀴 돌 듯이 소용돌이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지만 희망적인 것은, 내 감정을 뒤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보는 일은 하면 할수록 는다는 것이다. 내가 끝내고 싶은 문장으로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알면, 회복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 수 있다.
고비도 늘 있다. 특히 수업 시작 전 1시간에서 30분 사이, 유혹의 문장들이 떠다닌다. '아 갈까 말까'하는 생각들이 둥실둥실 몰려온다. 수업을 갈 때의 마음은 귀차니즘과 같은 무형의 감정들을 이겨내야 한다. 평소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을 때는 괜찮다. 오히려 열심히 다니다가 나를 완전히 믿을 때 방심하게 된다. 운동하는 습관은 늘 관리해야 한다.
유혹을 이겨내 수련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은 이긴 승리자의 감정을 확실히 느낀다. 끝나면 개운하고 뿌듯하고 다 좋다. 오글거리지만 몽글몽글 올라오는 이 해낸 느낌, 요가는 동작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명확하게 작은 성취감을 지체 없이 준다. 버퍼링이 없다. 집에 가는 길에, 사실과는 별개로 오늘도 요가를 뿌셨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에 쌓인 독소가 빠져나간 것만 같다. 요가 뿌셔뿌셔.
요가를 하며 인생을 배운다, 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하루하루를 잘 보낼 수 있는 정도의 기운을 채워올 수 있다고 하면 맞을까 싶다. 오늘의 요가는 오늘 하루만큼 잘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오는 것 같다. 그렇게 요가 하루살이가 되어간다. 그러다 하루의 요가로 일주일을 한 달을 1년을 잘 보낼 수 있는 마음을 쌓아갈지도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적어도 요가를 하고 온 날에는 나를 잘 살펴봤다고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