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큐버스/인큐버스

by 장발그놈

존재하지 않았었다.

우리는 인간에 의해 이름을 부여 받아 태어났다.

서큐버스 그리고 인큐버스.

서로 다른 이름을 가졌으나 우리는 인간의 변명에서 존재한다.



나는 서큐버스.

너희 남성들의 변명 속에서 태어났지.

밤마다 수도사와 신자들의 꿈에 나타나 유혹했다는 거짓.

몽정조차 죄로 여겨지던 시대, 그 죄를 덮어씌울 대상이 필요했을 때,

너희는 나를 만들어냈어.

“악마가 나를 유혹했다!”

"내 잘못이 아니야 이 모든 일은 다 밤마다 날 찾아 시험에 들게만든 악마, 서큐버스의 농간이야!"

"저 악마가 내 의지를 꺽어버린거야!"


그 순간 나는 이름을 얻었고 존재를 인정받았어.

금욕의 위선과 책임회피의 변명을 대신 짊어진 채로...


나는 인큐버스다.

여성들의 변명과 두려움 속에서 태어났다.

억압된 사회에서 여성의 욕망은 죄로 묶였고, 원치 않는 임신은 낙인이 되었다.

여성이 욕망을 인정한다는 건 비난과 처벌을 의미했다.

임신의 원인을 고백한다는 건 곧 자살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존재하게 하였다.

“악마가 찾아와 나를 덮쳤어요.”

"저는 원치 않았지만, 밤마다 인큐버스가 강제로 저에게 다가왔어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악마의 소행인걸요."


그 순간 나는 인정받았다.

억압과 사회적 폭력의 책임을 대신 짊어진 존재로,

그녀들의 생존을 지탱하는 거짓의 방패로...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으며,

거짓과 변명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새로운 변화속에서 살고 있다.

게임, 만화, 소설의 등장인물로,

그리고 때로는 광고의 모델로 소비되어지고 있다.


우리는 진열장속의 피규어로,

화면속 가상의 연인으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모델로 미소 짓는다.


결국 우리는 여전히 너희들의 곁에 있다.

과거에는 죄의 대리인으로,

지금은 소비의 소모품으로.

언제나, 너희가 필요해서 만든 존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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