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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천사 - 잿빛으로(2/3)

by 장발그놈

그날 밤,

굶주림에 지친 마을 사람들은 오후에 마주쳤던 소녀를 떠올렸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윤기 있는 머릿결, 건강해 보이는 뺨,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여유로운 미소를 띤 얼굴...

“그 아이 집엔 분명 뭔가 있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마주쳤다.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충분한 식량이 있는 거야. 불 피울 연료도 충분할 거야.”

“그래서 저렇게 멀쩡한 얼굴이었구나.”


누군가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절박함은 이성을 마비시켰고, 분노는 자신들의 고통을 정당화해 주었다.

“우리는 굶어 죽게 생겼는데, 혼자 따뜻한 밥을 먹고 있는 거야?”

마을 사람들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망설임은 없었다.

그들은 도끼와 막대기, 낡은 손수레에 빈 자루를 챙기고 어둠 속으로 움직였다.

소녀의 집을 향해...


그들은 이미 소녀의 웃음을 ‘조롱’으로, 건강한 얼굴을 ‘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더 흉포해졌고, 소녀의 집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점차 부수는 소리에 가까워졌다.

“열어! 안 그러면 부숴버릴 거야!”


그 중 한명이 도끼로 문을 부수었고, 사람들은 안으로 들이닥쳤다.

소녀가 천사에게 받은 식량과 두터운 털옷을 발견하자 그들의 눈빛은 차갑고 격렬해졌다.

그들은 소녀와 동생들을 거칠게 끌어내었다.

소녀는 필사적으로 동생들을 지키려 했지만, 그녀의 작은 힘으로는 그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

동생들의 비명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고, 소녀는 절망과 공포 속에서 모든 것을 붙잡으려 했다.

천사는 이 참혹한 광경을 하늘에서 지켜보며 손을 떨었다.

"이건 내가 원했던 결과가 아니야... 나는 단지 가련한 그녀를 돕고 싶었을 뿐인데..."


그 순간, 하늘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선택의 대가를 보아라. 저 소녀만을 위한 너의 감정적 판단이 세상에 어떤 고통을 불러왔는지 깨달아야 한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를 직시하고 비통함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서려 했지만, 신의 목소리가 단호히 그를 막았다.

“너의 도움은 더 이상 균형을 유지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너의 손을 벗어나야 한다.”


그 순간, 천사는 멈춰 선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긴 침묵 끝에, 그는 대답했다.

“균형이란, 고통을 방관하는 이름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제가 손을 뗐을 때, 이 아이는 아무 이유 없이 짓밟힐 겁니다.”

그의 날개 끝이 떨렸고, 눈빛에는 분노가 비쳤다.

“만일 제 손길이 균형을 무너뜨린다면, 그 균형은 애초에 잘못 세워진 겁니다.”

“저는 오늘, 당신의 정의가 아닌, 제 연민을 따르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며, 신의 마지막 경고를 무시하고 소녀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하늘에서 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쌍하고 가련한 이여,”

“너는 천사로서의 본분을 잊고 이성을 저버렸다.”


신의 목소리는 더는 분노가 아닌, 깊은 슬픔에 가까웠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모든 흐름을 지켜봐온 자의 아픔이었다.

“네 연민은 개인을 구하려 했을지 몰라도, 전체를 무너뜨렸다.”

“너의 손길은 굶주린 이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고, 소녀의 생존은 다수에게 불공정으로 비쳤다.”

“그로 인해 일어난 분열과 폭력, 의심과 탐욕은 예견된 질서를 무너뜨렸다.”


신은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선언했다.

“세상은 감정으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연민이 모든 판단의 근거가 될 때, 정의는 감정에 휘둘리고, 질서는 흔들린다.”

“너는 하나를 구하려다 열을 잃었고, 결국 그 하나마저 지킬 수 없었다. 너는 그릇된 선택을 통해 원인을 만들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빛이 깨어지듯 균열이 생겼다.

“이제 너는 천상의 빛을 잃고, 그 선택의 무게를 땅 위에서 짊어지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네가 지킨 것, 그리고 잃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미세한 균열음이 들려왔다.

은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날개는 깃털 하나하나가 거칠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그 깃털 끝은 까맣게 타들어갔고, 연기처럼 어둠이 피어올랐다.


순백의 날개는 이제 불에 타들어간 잿더미와 같은 어둠으로 변화하였다.

몸을 감싸고 있던 옷도 마찬가지였다.

영롱하게 반짝이던 천은 한순간에 빛을 흡수당하듯 어두운 먹빛으로 변해갔다.

빛 자체가 지워진 듯, 어두움만 남았다.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 속엔 고통보다 더한, 절망과 원망만이 남게 되었다.

그의 발이 처음으로 땅에 닿았고, 그곳엔 이제 더 이상 천상의 존재가 아니게 된 자의 발자국이 새겨졌다.

“어째서 내 잘못을 되돌릴 수도 없게 하는가!”


그는 하늘을 향해 외쳤지만, 돌아갈 곳이 사라진 절규는 허공에 스미듯 사라져 갔다.

천사로서의 빛과 역할을 잃었음을, 그는 마침내 온몸으로 실감했다.

하지만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

이제 그는 땅 위의 존재가 되었고, 그 운명을 살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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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