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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천사 - 프롤로그/잿빛으로(1/3)

by 장발그놈

하늘 위, 모든 천사는 신의 질서를 따르며 완벽한 조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천사들은 선과 악을 초월해 공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인간 세계를 돌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천사가 굶주림 속에 쓰러져가는 한 소녀를 발견했다.

그가 바라본 마을은 끝없는 흉년으로 메말라 있었고, 논밭은 갈라져 더 이상 싹조차 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곡식을 두고 다투었고, 아이들은 굶주림에 울음을 삼켰다.


소녀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남은 동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마른 손으로 동생의 입에 풀 한 줌을 밀어 넣는 모습은 천사의 마음을 움직었다.

다른 천사들이 '이는 인간이 겪어야 할 시련'이라며 이성적으로 바라본 것과 달리, 그는 그녀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신의 뜻은 공정하다 말하지만, 왜 이토록 무거운 고통이 그녀에게만 주어졌단 말인가?”


그는 밤낮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그녀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소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하늘의 질서를 거스르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소녀가 굶주리지 않도록 음식을 제공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며, 병든 동생을 치유했다.

소녀의 얼굴에 그늘이 사라지고 미소가 지어지는 날이 점점 많아지자 그는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다고 믿게 되었다.

“나는 단지 그녀를 돕고 있을 뿐이다. 불쌍하고 가련한 삶을 구원해 주는 것. 그게 바로 천사가 행해여야만 하는 일 아닌가? 질서를 유지하여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게 무슨 잘못이라는 말인가.”


그러나 그의 선택은 균형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질서를 통해 다른 인간들에게 돌아갔어야 할 은총조차 소녀에게 집중되었고, 그만큼 주변 마을과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척박해졌다. 이에 다른 천사들은 그에게 경고했다.

“인간의 고통을 공평하게 바라봐야 하며 질서와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만 한다. 때론 그게 불합리하다 생각될지라도 넓게, 전체를 바라볼 때 그게 더 인간 세상에 이로운 길이다. 너는 지금 감정에 휘둘려 질서를 어그러뜨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 기록을 조사해보니 다른 이들에게 돌아갈 은총의 일부를 떼어내서 그녀에게 주어야만 합당하다. 그게 공평하고 합리적인 은총의 분배이다. 나는 그녀를 돕는 것이 내가 행해야 할 선이자 질서라고 믿는다.”



그의 강력한 주장에 다른 천사들은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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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