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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천사(5화) - 지켜보는자(2/2)

by 장발그놈

결국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밤이 깊어 인간들이 잠든 도시를 조용히 가로질렀다.

불빛 사이를 스쳐 지나며, 그는 한때 천사였던 존재가 홀로 앉아 있는 황량한 언덕으로 다가갔다.


천사는 악마의 기운을 느끼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시선이 맞물렸다.

“네가 왜 여기 있느냐? 천사도 될 수 없고 악마도 아닌 나를 조롱하려고 온 것이냐?”

천사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그 속엔 깊은 피로가 배어 있었다.


악마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조롱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너를 멀리서 오래 지켜봤지만,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천사였던 네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려다 타락했고,

그 뒤에... 다시 잿빛 날개를 얻게 된 이유까지.

그 변화를 겉으로는 봤지만, 그 속에서 무슨 생각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더군.”


그는 천사의 날개를 가리키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네가 천사나 악마 그 누구보다 인간을 잘 이해하게 된 건지도,

아니면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한 건지도, 난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물으러 온 거다.”


천사는 악마를 경계하며 물었다.

“너는 내가 타락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가?

나는 천사의 역할은 잃었으며, 악마의 역할도 할 수 없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잿빛의 존재이며 나의 길을 찾을 뿐이다.”


악마는 잿빛 날개의 천사 곁에 앉으며 답했다.

“그렇기에 네가 특별한 것이다.

천사들은 항상 이성을 중시하며 규칙에 얽매여 있다.

악마들은 반대로 감정과 욕망에 사로잡혀 질서를 무너뜨리기만 한다.

하지만 너는 둘 사이의 균형을 깨닫고 있다.

나는 네가 천사도, 악마도 아니지만,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천사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침묵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모든 고통과 외로움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가 이 길을 걸으며 느낀 깨달음과 고독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음을,

회색빛의 힘을 얻을 때도 느끼지 못한 자신의 존재를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악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너는 왜 지옥에 머물며 인간을 유혹하고 있는 거지? 너 또한 인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악마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너처럼 선택을 해야 할까? 그 선택이 고통을 가져올 것을 알면서도?”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여전히 감정을 조롱하고, 인간의 약함을 이용하는 것이 더 쉬운 길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너를 보며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네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봐라.

내가 너를 따를지 말지 선택할 수 있도록.”


천사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나는 증명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일은 그저 나의 길을 걸으며 인간들이 감정과 이성을 조화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나의 길이 너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네가 느껴야 할 감정이지, 내가 강요할 일이 아니다.”


악마는 천사를 깊이 응시하며 조용히 웃었다.

“재밌군. 네가 실패하든 성공하든, 나는 계속 지켜볼 것이다.

어쩌면 네가 진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아갈지도 모르지.”


그러고는 악마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천사는 홀로 남아 자신의 회색빛 날개를 펼쳤다.


그는 더 이상 천사도, 악마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를 이해하려 한 악마의 존재는 그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이성도 감정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길은 외롭지만, 빛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그의 존재는 천사와 악마가 아닌, 그 중간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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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