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집행
검은 두루마기에 검은 갓을 쓰고 있거나, 누더기를 걸친 채 거대한 추수용 대낫을 들고 있는 해골같은, 퀘퀘묵은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그런 고전적인 상상은 이제 접어두라.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떠도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맞춤 양복 수트를 쫙 빼입고, 잘 닦인 고급 구두를 신은 세련된 인텔리다. 물론, 우리의 본질을 상징하는 검은색 아이덴티티는 변하지 않았다. 검은 넥타이, 검은 셔츠, 검은 재킷.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할 때 항상 이 색깔로 자신을 정의한다.
검은색은 단순한 색상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을 상징하는 절대적 개념이다. 다만, 이제는 보다 현대적인 형태로 변화했을 뿐이다.
이 점은 분명히 하고 싶다. 우리는 당신의 죽음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는다. 당신의 생명이 끝나는 그 순간, 그제야 우리는 일을 시작할 뿐이다. 즉, 우리가 당신을 죽음으로 이끌거나, 당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행정 절차를 처리하는 공무원에 불과하다. 삶과 죽음 사이를 연결하는,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절차를 실행하는 존재.
그렇다. 우리는 현대 사회의 공무원처럼, 죽음 이후의 체계적 과정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러니 너무 우리를 두려워하지 말아달라. 당신이 성실히, 정직하게 살아왔다면 우리를 보고 겁낼 이유는 없다. 우리의 방문은 그저 하나의 절차일 뿐이며, 아무런 문제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왔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한평생 악행을 저지르며, 삶 속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임을 다하지 않은 자들에게 우리의 방문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체납된 세금이 있는 사람이 체납 징수 공무원과 집행관의 현장집행을 두려워하듯이, 삶 속에서 방치한 책임과 죄악이 많다면 우리의 방문은 공포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업무는 절대적이다. 그 어떤 감정도 개입하지 않는다. 우리는 당신의 선과 악을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당신의 행적이 남긴 기록을 검토하고, 그에 따라 행정 절차를 밟을 뿐이다. 당신이 삶을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우리는 단순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수도 있고, 강제적인 개입을 할 수도 있다.
그 기록이 정의롭고 깔끔하다면, 당신은 우리가 마치 지나가는 그림자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 기록이 혼탁하고 어둡다면, 당신은 우리가 얼마나 단호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히 절차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그 절차는 결코 피할 수 없다.
우리는 현대적이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는 질서를 유지하고 흐름을 이어주는 존재다. 우리를 무서워하는 대신, 당신 자신을 돌아보아라. 우리가 세련된 모습으로 당신 앞에 나타난 그날, 당신은 우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를.
그러니, 오늘도 열심히 살아라.
그것이 당신이 우리를 만났을 때, 떳떳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