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지워지는 설화

by 장발그놈

세상이 발전할수록 인어들은 점점 더 깊은 바다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고,
바다를 탐색하는 범위는 얕은 해안가를 넘어 심해로까지 확장되었다.

배 밑바닥을 스치며 지나가는 어군 탐지기와 초음파 신호, 바다 밑을 밝히는 탐사선의 인공 조명은 인어들의 존재를 위협했다.


더 이상 인간의 눈을 피해 수면 가까이 떠오를 수 없었다.

결국, 인어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더 깊고 더 어두운 심해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어들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깊은 바다의 혹독한 조건에 맞춰 몸을 변화시켰다.


한때 햇살이 물속을 비추던 깊이에서 살던 시절,

그들의 꼬리는 햇빛을 반사하는 알록달록한 비늘로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전설 속에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로 그려졌던 인어의 모습은 바로 그 시절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심해의 어둠 속에서는 화려한 비늘이 오히려 자신들의 위치를 드러내는 위험 요소가 되었다.


그들은 빠르게 변해갔다.

꼬리는 빛을 흡수하는 거무튀튀한 색으로 변했고, 반짝이던 표면은 매트한 질감으로 바뀌었다.

상반신의 피부도 더 이상 인간처럼 부드럽고 희고 매끄럽지 않았다.

극도의 수압에 적응하기 위해 점점 단단해졌고, 일부는 갑각류처럼 거칠고 딱딱한 표면을 가지게 되었다.

피부가 갈라지고 주름이 깊어지면서, 한때 인간과 비슷했던 외형은 점점 사라졌다.


뼈와 관절 역시 변형되었다.

심해의 강력한 수압은 인어의 몸을 더욱 응축시켰다.

관절의 길이는 줄어들고, 뼈는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진화했다.

과거에는 물속을 유려하게 유영하는 것이 인어의 특징이었지만,

이제는 몸을 움직일 때 최소한의 에너지만으로 최대한의 추진력을 낼 수 있도록 변했다.

꼬리의 움직임은 느리고 묵직해 보였지만, 그 한 번의 파동만으로도 먼 거리를 나아갈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이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눈이었다.

깊고 어두운 바다에서 시각은 무의미해 보였지만, 인어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적응했다.


일부 인어들은 시력을 완전히 버렸다.

그들의 눈은 점점 작아졌고, 마침내 작은 흰 점으로 퇴화했다.

대신 그들은 미세한 물의 진동과 화학 신호를 감지하는 감각을 극도로 발달시켰다.

마치 깊은 땅속을 흐르는 미세한 떨림을 감지하는 지렁이처럼, 그들은 보지 않고도 사냥감과 위협을 감지할 수 있었다.


반면, 다른 일부 인어들은 눈이 극도로 커졌다.

심해어처럼 작은 빛이라도 극대화하여 볼 수 있도록,

거대한 크기로 변한 그들의 눈은 깊은 어둠 속에서도 미세한 윤곽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호흡 방식도 달라졌다.

얕은 바다에서는 풍부한 산소를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심해로 내려갈수록 산소는 희박해졌다.

그들은 심해의 낮은 산소 농도에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아가미를 더욱 효율적으로 변화시켰고,

일부는 심지어 황화수소나 기타 해저의 화학물질을 에너지원으로 변환해 생존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제 그들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 상상하던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거무죽죽한 꼬리와 딱딱한 갑각 같은 피부,

커다란 눈동자와 날카로운 치아를 가진 이들은 더 이상 인간이 꿈꾸던 로맨틱한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깊은 바다 속에서 갑작스럽게 마주쳤을 때 인간이 두려움에 사로잡힐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들의 진화는 생존을 위한 필연이었다.

인어들은 바닷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자신들만의 왕국을 지키고 있었다.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그들의 세계는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어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은 계속해서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언젠가 이 어둠 속마저 그들의 손이 닿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갈 곳이 더 이상 없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은 더 깊은 바다로 도망쳐야 한다는 의견과, 인간의 탐색을 완전히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러나 점점 더 발전하는 인간의 기술이 그들에게 남은 시간을 얼마나 허락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들 중 누구도 인간과 다시 마주치기를 바라지 않았다.

공존이나 접촉에 대한 기대는 이미 오래전에 버려졌다.

인간은, 단지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일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퍼지는 그들의 대화는 서로의 불안을 반영하며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들의 진화는 끝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지워지는 설화처럼


바다 속을 향해 가고 있었다.

keyword
이전 01화유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