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감정과 이성

by 장발그놈

악마는 감정의 집합체이다.

이성적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 뒤에 가득한 욕망의 덩어리.

그래서 그의 말, 손짓, 눈빛, 그 모든 것이

‘지금 느끼는 것’을 감추려 한다.


그는 분노할 줄 알고,

질투하며,

눈물 흘리고,

때론 진심으로 웃는다.


악마는 인간의 고통에 공감한다.

공감할 줄 알아야 조종할 수 있다.

공감한 후에는 그것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그는 감정을 키운다.

조금 더 분노하라고,

조금 더 의심하라고,

조금 더 울부짖으라고.

그에겐 질서가 없다.


그는 감정의 흐름대로 살아간다.

슬퍼하면 같이 우는 척하고,

절망하면 거기서 온기를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악마는 인간에게 가장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는 그에게 이해받았다고 믿는다.

그가 무너진 우리의 귓속에

'넌 틀린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기 때문에...


반면,

천사는 다르다.

천사는 철저히 이성적인 존재다.

감정을 이해는 하되, 느끼지는 않는다.

슬픔을 ‘알고’,

기쁨을 ‘해석’하며,

절망을 ‘분석’한다.


그는 정해진 규칙과 역할 속에서 움직인다.

돕지도, 끌어안지도 않는다.

그저 말할 뿐이다.

"이 길은 너에게 더 낫다."

"이 고통은 네가 지나가야 한다."


그의 말은 우리에게 냉정하고 힘겹지만 정확하다.

우리는 그에게 화를 내고,

때론 외면하지만,

돌아보면 그의 말이 늘 ‘맞았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천사가 감정에 물들게 되는 순간이 온다.

눈물 흘리는 아이를 보고,

절망에 빠진 노인을 보고,

스스로를 탓하는 인간을 보고,

천사는 흔들린다.

“이 아이는... 이제 그만 괴로워해도 되지 않을까.”

“지금 도와줘도... 괜찮지 않을까.”


그가 개인의 슬픔에 손을 내밀때,

하늘의 질서가 감정에 의해 흔들리게 된다.

천사의 감정적 개입은 세상에 '예외'를 만든다.

그 예외는 새로운 균열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구원,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정이 된다.

악마는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천사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한다.

“봐, 너도 결국 느꼈잖아.”

“그럼 이제 너도 나처럼 될 수 있겠네.”

감정은 그렇게 이성을 삼킨다.

그러면 천사는 천사이기를 멈추고,

연민을 가장한 혼란이 된다.


악마는 인간과 함께 무너지는 존재고,

천사는 인간이 다시 일어나길 기다리는 존재다.

하지만 그 둘 모두,

‘감정’이라는 이름 아래 흔들릴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감정적인 악마와 감정을 억누른 천사 사이에서

스스로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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