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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04. 2023

여는 글

메밀과 팥 그리고 목련 (가제) 

https://www.youtube.com/watch?v=0w7vwoynALE&ab_channel=YuhkiKuramoto-Topic

장우철, Flowers-Sicilia 2015


지금 시간은 새벽 4시 30분. 유키 구라모토 선생의 Dawn이라는 곡을 듣고 있다. 문득 “내가 과연 책을 낼 자격이 되는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 마침 귀여운 고양이 물루가 무릎에 앉아 “닝겐 뭐 해? 나랑 놀아줘”하는 눈총을 준다.      


‘나는 참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이상 후쿠시마 핵폐기물 세슘, 인간실격 요조와 같은 부암동 사마천’  
        

유머와 자기 비하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는 나의 자기소개이다. 늘 그렇듯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자기혐오도 그에 비례한다. 지금까지 나의 삶 전체는 기대와 실망의 연속이라 그런지 자조하는 버릇은 곧 나의 성격이 되어버렸다.      


서울 올림픽이 열린 그해, 1988년. 나, 장준영이 태어났다. 이십여 년 뒤, 자신이 후쿠시마 핵폐기물 같은 청년이 될지 몰랐던 그 아이, 어릴 적 순수하고 눈이 예뻤던 그 소년은 좌충우돌하는 이십 대를 온몸으로 돌파하며 가까스로 서른의 문턱을 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별 볼 일 없는 서른여섯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참 오만하고 건방졌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웠다. 아버지에 대한 극도의 반감으로 잘 다녔던 학교도 중간에 마음대로 때려치우고,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죽겠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녔으며, 나만의 사업을 하겠다고 나댔다가 여러 번 곤두박질도 쳤다. 내 나이의 누구나 다들 그렇듯 나 역시 꿈과 희망을 쫓아 열심히 달렸고 또 숨 막히게 사랑했다. 그러나 처참하게 넘어져 주저앉았고 현재 앉은자리에서 청승을 떨며 울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 재회를 간절히 바라며 삼천 배를 했고 그 때문에 무릎에 심각한 염증까지 생겼다. 사랑도 잃고 무릎도 잃은 바보 같은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아마 그럴 것이다.‘누구에게나 다 그런 시절이 있고, 그때는 다 그런 거’라고. 물론 ‘그 나이 때 나는 그러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사뭇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좋다.      


서른의 한가운데에 서서 나는 흔들리며 방황하고 상처받고 불안했던 20대에 작별을 고하며 내가 맞이한 삼십 대를 이야기하려 한다. 이해받고 싶고 이해하고 싶어서,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 방황한 나의 이야기가, 사랑하고 미워했던 나의 이야기가, 지금 나와 같은 시기를 통과하거나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처럼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글에서 어떤 향기가 날지 모르겠다. 꽃내음 나는 플로랄 향일지, 시원한 페퍼먼트 향일지 아니면 동네 목욕탕에서 맡을 수 있는 싸구려 향일지.       



누군가에는 이 글이 플로랄 향이길 바라며.      

북악산, 봄을 여는 길목에서 

부암동 사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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