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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20. 2023

아버지의 이메일

엄마를 부탁해 


2월이 시작된 지난주 목요일, 햇빛이 잘 들어오는 후암동에 위치한 어느 카페에서 홍재희 감독을 만났다. 오후 2시에 시작한 대화는 다음날 새벽 4시가 되어 끝이 났다. 


길고 긴 마라톤 같은 대화 속 화두는 치유였다. 우리는 무엇으로 치유를 받아야 하는 것이고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자기혐오가 깊을 수밖에 없다. 사랑과 증오는 0과 1처럼 각기 다른 것이 아닌 태극 문양처럼 섞여있다. 두 개가 합치면 세상이자 곧 우주이며 사람의 정신이 된다.   

   

그녀와 나는 세대도 성별도 환경도 달랐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1시간 3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남겼다. 그녀는 용서가 아닌 이해라고 했다. 원래 용서는 이해에서부터 출발된다고 생각하며 10년 전 인도에서 만난 달라이라마도 비슷한 맥락으로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1930년대에 태어난 그녀의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 일 년간 그녀에게 마흔세 통의 메일을 보냈고 아버님의 장례식을 마친 뒤, 다시 열어본 메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가족 모두에게 건넨 자신의 이야기였다. 일제 강점기, 해방 후 혼란 스러웠던 시대상, 6.25 전쟁, 월남전, 70년대 사우디 건설 열풍, 88올림픽 그리고 아파트 재개발 광풍까지. 파란만장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한복판에 그녀의 아버지는 작은 흔적을 남기셨다.      


그녀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릴 적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고 월남전, 사우디 출장으로 인해 기억이 별로 없었으나 청소년기 이후 아버지는 골방에 틀어박혀 술로 세월을 지새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따금씩 발생되는 폭력.      


결국 그녀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가출을 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런 말 없는 아버지가 세 남매 중 둘째 딸에게만 마흔세 통의 이메일을 보내셨던 이유는 아마 그녀가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기에 그나마 자신의 작가적 DNA가 유일하게 비슷했던 그녀에게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영화 속 그녀의 아버지는 정확히 나의 할아버지 세대와 일치했다. 1930년대 중 후반생. 격동의 세월 속에 태어나 지금처럼 개인의 인권 혹은 취향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닌 말 그대로 먹고 사니즘이 생사여 탈에 굉장히 중요했던 그 시절. 그리고 빨갱이 포비아.     

  

영화를 보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본인이 9살 무렵 어머니가 장티푸스에 걸려 돌아가셨고 이후 집에 들어온 계모에게 인주지짐을 당하는 등 학대를 받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할아버지가 중학생이 될 무렵 인민군이 남침해서 그가 있던 충남 청양까지 들이닥쳤고 당시 집이 지옥 같았던 할아버지는 북한 의용군에 아무 생각 없이 지원해 총알 받이로 최전선에 배치되었다가 충북 영동 황간이라는 곳에서 미군들의 박격포에 맞아 기절을 했었는데 대검으로 인민군의 시체에 칼을 찌르는 소리에 손을 번쩍 들고 살려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이후 거제도에서 포로생활을 하였으며 전쟁 후 다시 한국 군대에 입대했다고 한다.   

   

그런 히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도 빨갱이 취급을 받으며 사회에서 거세 당했고 그의 자식들은 연좌제로 인해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싶었던 아버지 그리고 공부를 아주 잘 했던 큰 고모가 청와대 비서실에 떨어지는 등 아픔의 사슬은 이어졌다.      


영화 속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을 떠나 더 큰 세상 속으로 떠나고 싶어 했다. 마치 최인훈의 소설 '광장' 속 주인공처럼. 하지만 밖의 세상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끝없는 시련과 절망에 빠져 남은 세월을 술로 보냈다. 가족들과의 대화는 끊었다. 지금 보면 심한 우울증에 빠지셨던 것 같다.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 무능력한 가장. 세상의 큰 족적을 남기고 싶었지만 사회에서 거세된 남자. 그런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한 페이지에 사진 한 장 남기는 것이지 않았을까.     


영화 속 아버지는 참 사진을 많이 남기셨다. 나온 사진만 해도 수십 장이다. 사진을 찍는 것보다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 분명 그는 역사 속에서 자신을 남겼다. 월남에서 사우디에서 88올림픽에서 마지막으로 본인이 정말 하기 싫었다는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도.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니 그녀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하면서부터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해는 용서가 아니다. 하지만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3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나의 아버지들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 동굴에서부터 아파트까지.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경술국치 때 태어나서 일제 강점기를 온몸으로 겪었으며 고조할아버지는 갑신정변 때 태어나 제국들의 침략 그리고 동학 혁명을 겪었을 것이며 그의 아버지는 서학을 접해 박해를 받았다. 또 그의 아버지와 아버지는 병자호란, 임진왜란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나는 좋은 세상에 태어났다. 단순히 먹고 사니즘에 관한 생사여 탈이 아닌 나에 대한 이해와 고민을 할 수 있는 시대. 사뭇 배부르고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그런 시대.  그러니 나는 꼰대라고 불리는 우리 아버지 세대들을 좀 더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는 그런 환경을 가진 것이고 내가 더 좋은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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