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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 어느날 Nov 11. 2021

05) 내 잘못이 아니다, 회사가 문제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생각해보니까 한숨도 정말 많이 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힘들다'라는 표현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았다. 언제나 가족들에게 든든하고 쓰러지지 않는 나여야만 했기에, '힘들다' 말하는 순간 모든  무너질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운동에  집착했다. 적어도  순간은 마음속에 있는 울분을 토해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새 운동에도 소홀해졌다. 그래서 유일한 분출구를 잃은 마음의 고통이, 나로 하여금   없이 한숨을 토하게 만들었나 보다. 은근히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가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회포를 풀면 기분이 한결 좋아졌으니까. 늦은 퇴근과 술자리의 반복, 그렇게 나도 전형적인 월급쟁이가 되어가는 듯했다.


고작 전화 한 통에 빠르게 뛰는 심장과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차분해진 그 순간, 나는 다시 내 목표와 신념을 상기시켰다. '나는 절대로 무너지면 안 돼, 고작 2년밖에 안 했는데 왜 이래?' 분명 내 몸이 반응을 보인 그 순간에도 나는 나를 보듬지 않고 다그쳤다.


그래,  욕심이 과했다.  회사에  삶을 투자해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내가, 감히  인생의   가지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단 말인가?  나은 미래를 위해 서울을 떠나  격오지에 있는 현장에 자원했다. 하루에 15시간씩 일을 해도, 매일매일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가 터져도 그것은  부족함으로 인한 것이며 나를 더욱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것이다. 고작 2  사원인 나에게 관리자의 역할을 부여하는  회사는 업무를 과하게 주는 곳이 아닌 기회를 주는 곳이다. 다른 편한 곳에서 일하는 동기들과의 격차는  벌어질 것이고, 나는 회사에서 더욱 빛날 것이다. 그렇게 또다시 스스로를 세뇌했다. 


나는 마음이 처음으로 보내는 꽤나 뚜렷한 신호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동안 놓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그리워하는 나를 마치 철없는 아이처럼 다그쳤다. 회사의 녹을 먹는 직장인이다. 물론 공부도 하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다. 저녁에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하면서 회사에서 성공하길 바라는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회사가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  있는 유일한 모범 답안이었던 나에게, 남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하려는 것은 사치였다.


하지만   시작된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화가  때마다 심장이 빨리 뛰고 갑작스러운 불안감이 극도로 치솟았다. 아무리 치밀하게 작은 것까지 챙기려고 혼자 발버둥을 쳐도,  넓은 운영 현장에서 사건 사고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항상 발생했다. 고객사  거래처에서 클레임이 쏟아져 들어왔고 여전히 모든 원인을 나의 무능력으로 돌렸다. 그때마다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가 한숨을 내뱉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하루는  상사가 따라 나와나에게 말했다.


'너 열심히 하고 잘하는 거 다 알아. 일이 많은 만큼 모든 걸 다 챙길 수는 없는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자책할 필요 없어.'


짧은  마디를 듣고  , 머릿속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그래, 나는  지금 나를 탓하고 있는 걸까?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라고  사람이 없다. 나에게 완전무결을 요구한 사람도 없으며 항상 나를 다그치고 깎아내린   자신이었다. 내가 그렇게 못나고 무능력한가? 아니다.  삶을 돌아보면 많은 것을 성취하고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모자란 점만을 기어이 찾아내서 나의 노력과 성취를 평가절하했다.  이상 모든 잘못을  탓으로 돌리고 자존감을 갉아먹어서는  된다.


이곳의 현실은 어떤가? 이곳은 분명 국내 최대의 기업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환경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업무를 견디지 못해, 이미 선후배 가릴 것 없이 한 달이 멀다 하고 퇴사자가 줄줄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도 하루면 도망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아는 본사에서도 개선을 위한 회사 차원에서의 조치는커녕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까?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넘쳐나는 업무와 예상치 못하게 터지는 사고가 줄어들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아니'였다. 이 상황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 탓이라 자책하며 내 소중한 것들도 내려놓은 채 나를 갈아 넣었다.


그래, 내 잘못이 아니다. 회사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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