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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 어느날 Nov 09. 2021

04) 대기업, 정말 장밋빛 인생이 맞을까?

모든 회사의 입문교육이란, 그 회사의 과거 영광의 발자취, 현재의 위상, 미래의 비전을 아주 감동적으로 세뇌시켜 정신 개조를 시키는 교육일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렇게 세뇌당한 신입사원이었으니까. 혹시나 오해를 살까 봐 덧붙이자면, 스스로의 성장을 목표로 본인의 업무에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잘 안다. 하지만, 특히 신입사원 중에는 맹목적으로 회사의 위상과 본인의 가치가 동일한 것처럼, 한 껏 '뽕'에 취해 있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랬으니까. 나는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에 당당히 입사했다는 '뽕'과 이곳에 나를 던져 넣으면 내 인생 또한 이 회사처럼 찬란해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가득 찬 신입사원이었다.


하지만 화려했던 교육 기간이 끝나자마자, 현실은 빠르게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업무의 특성상 현장 근무 경험은 필수였다. 나는 가장 규모가 크고 힘든 현장으로 자원했다. 신규 발령을 위한 인사 면담도 10분이   걸렸다. 나의 태도에 흥미를 보이는 인사팀의 반응에 약간의 뿌듯함을 느꼈다. 그들이 적고 있는 인사 카드의  말들이 언젠가는 나에게  선물을  수도 있다는 망상을 하기도 했다. 살면서 처음 가보는 작은 동네에 어머니와 집을 얻으러 다니면서도, 반지하에서 벗어날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컸다. 제대로 세뇌당한 신입 사원은 그렇게 열정과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매일 12시간 이상은 기본으로 일했고, 새벽에 퇴근하거나 새벽에 조출을 한 적도 많았다. 토요일은 당연히 출근하는 날이었고, 일요일 하루 쉬는 날엔 서울에 올라가 친구들과 운동을 하거나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그 상황을 참아낼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이제  누구도 우리 가족을 불안해하지 않았다. '대기업 다니는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가  아파도 든든하지 ' 같은 말들이 나를 후련하게 만들었다. 둘째,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짧은 기간에 많은 업무를 하며 사고도 많이 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만큼 주변에서 좋은 평을 들었고 그것이  나의 자부심이었다.  많은 인정을 받기 위해 회사에 나를 더욱 갈아 넣었다. 셋째, 이대로만 가면  인생은 장밋빛이라는 생각이 흔들리지 않았다. 월급이 적은 편도 아니었고, 복지도 좋았다. 회사의 이름값이 높아 마치 나의 가치도 높아진 듯했다. 이렇게만 간다면 우리  빚도 갚고,  학자금 대출도 갚고, 결혼도 해서 내가 꿈꾸던 ' 때문에 피폐해지지 않는 가정' 꾸릴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 생활2 정도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찾아온 변화를 느낀 적이 다. 여느 때와 같이 토요일 출근을 위해 준비를 하는 , 집안  바닥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까지 머리카락이 빠진 적이 없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나는 일에 대한 생각을 놓고 지낸 적이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이슈에 매일매일이 불안하고, 누구도 예방할  없는 이슈였음에도 항상  책임이라고 생각해 나를 탓했다. 자책이 심해질수록 점점  예민해져 갔다. 운전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샤워를  때도  무언가 놓치지 않았을까 불안에 떨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일요일에 출근해서 끝나지 않을 일들을 혼자 붙잡고 있었던 적도 많다.


'누구나  그러고 살아, 그렇게 나이 드는 거지 .' 하는 수준의 생각보다는 강한 충격이 있었다. 현장 사무실로 출근하는 내내,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면서 살았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먼저, 19 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 입사  마지막 불꽃으로 멋진 바디 프로필을 남겼다. 하지만 이제는 배가 나오고 살이 쪄서 그때의 옷은 맞지도 않는다. 둘째, 내가 사랑했던 영어. 나는 영어 자체를 좋아해서 영문과를 선택했다. 회사도 글로벌 전형으로 합격했고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는 것도 하나의 목표였다. 하지만 입사하고 2 동안 영어를  마디도 해본 적이 없다. 만기가 다가오는 말하기 성적을 갱신할 걱정뿐이다. 평생 운동과 영어는 놓지 말자고 다짐했다. 항상 나의 일상에서  둘을 위한 시간을 꾸준히 할애했다. 그만큼 운동을 사랑했고 영어를 좋아했지만, 어느새   가지를 전부 손에서 놓고 있었다.


작은 충격을 받고 사무실에 앉았다. 그래도  장밋빛 미래는 포기할  없었다.  회사는 나에게 그것을 약속해줄  있다. 그래서 참고 견디는 것이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려던 찰나, 울리는 전화  통에 나는 확실하게 뭔가 이상함을 느낄  있었다. 전화벨을 듣는 순간  심장이 빨리 뛰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터진  아닐까 조마조마하고 불안해서 전화를 피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전화를 받지 못했다.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감에 가까운 느낌에 쉽사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나는 또다시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순간 분명해졌다.


'뭔가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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