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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 어느날 Nov 07. 2021

02) 나의 신념, 나의 인내

나는 대학교를 입학한 첫 학기를 제외하고, 전부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등록금을 해결했다. 또한 무이자로 대출이 되는 생활비 대출은 매번 받아서 부모님께 보내줬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던 친구들은, 어린 마음에 집에서 등록금을 전부 지원해주는 대학생들을 욕하곤 했다. 하지만 난 등록금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거나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내가 자란 환경에서 두 아들의 등록금을 전부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내가 벌어서 갚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의 보상심리 때문인지, 대학 생활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학기를 마치고, 무작정 휴학을 했다. 20 어린 청년의 마음에 여러 가지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다.  , 돈을 벌어보고 싶었다. 보통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나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체험해보고 싶었다. 둘째,   넓은 세상을 체험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의 활동 반경은 학교와 집이 전부였고, 주말에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만 네다섯 시간씩  것이 전부였다.  좁은 반경을 벗어나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었다. 특히, 나는 강남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번화가, 유흥가, 부자 동네 ' 온갖 수식어는  가지고 있는 강남 지역은  나에게는 신비한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의 직원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하루 쉬면서,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하루 종일 서있고 뛰어다녀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발가락에 티눈이 생겨도 참아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보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기분을 매일 느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압구정 로데오는 지금의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핫플레이스'였기 때문에, 퇴근 후 압구정에서 사람 구경도 하고 술도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었다. 당연히 또래들보다 벌이도 좋았고 씀씀이도 여유로웠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면서 20살의 나는 느꼈다. '아, 열심히 일하면 보상을 받는구나.'


 이후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해봤다. 버섯 농장에서도 일해보고, 유흥가의 주점에서도 새벽까지 일해봤다.  힘들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만큼 돈도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고, 월급의 일부분을 항상 부모님께 보내주면서 효도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만 참고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뭐든지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 그만큼 보상받을 것이다'라는 신념은 마음 깊이 박혀 조금씩  가치관을 형성해나갔고,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군대를 전역할  즈음 부모님은 당신들의 고향으로 귀농을 하셨고, 나는 혼자 서울에 남아 자취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얻어주신 햇빛도   들고 화장실도 바깥에 있는 반지하에서 5넘게 살았다. 하지만 나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혼자 산다는 자유로움이 모든 것을 상쇄해주었기 때문이다.  무렵부터 나는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목표는 '대기업 입사'였다. 그것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항상  판단의 기준은 ' 걱정 없이  가족을 지킬  있는 경제적 여유, 무시 못하는 간판'이었고, 어린 나에게 대기업 입사는 모범 답안이었다.


 인생을 위해 스스로 세운 목표에도 ' 행복' 없었다. 그게 나의 숙명이며, 모두의 행복을 위해 고통을 인내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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