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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 어느날 Nov 06. 2021

01) 나의 꿈, 내가 원하는 삶


미래에 대한 그림을 조금이나마 그리는 나이인 20대가 되고나서부터, 나는 항상 '내 가족은 돈 걱정 없이 살게 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돈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란 것쯤은 잘 알고 있지만, 없는 것보단 백배고 천배고 낫다는 것이 나의 삶을 통해 얻은 가치관이었다.


우리 집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왕년에 잘 나가던 아버지'가 이끄는 가정에서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잘하던 사업이 망하면서' 가세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궁핍해진 집에서 부모님은 자주 싸웠고, 초등학교 때는 가끔씩 하교 후 집에 가면 물건들이 여기저기 던져지고 깨져서 집 안이 난장판이었던 적도 많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와는 중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떨어져 지냈고, 그 이후로 정신병원과 알코올 클리닉을 오갈 정도가 되기까지 나는 제정신으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또한 나는 우리 집안의 장손이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지만 큰 아버지의 집에는 딸들 밖에 없었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명절 때마다 항상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소위 '장손의 덕목' 같은 것을 주입식으로 교육받았다. 매번 세상 필요 없는 허례허식이라고 느끼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고 발언권이 없어 참고 또 참았다. 친척들은 '우리 장손, 큰 아들'하면서 덕담을 하지만, 나에게는 부담이며 압박이었다. 아마 그 말을 하는 당사자들은 별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테지만,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받아온 주입식 교육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는 실패했다. 집에 빚이 많아 가끔은 돈을 받으러 낯선 사람들이 온다. 제정신이 아닌 좀비처럼 살아가는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는 항상 힘들어하셨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빚어진 '내가 우리 집의 기둥이 되어야겠다'는 신념, '친척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도록 내가 잘 돼야겠다'는 결심이 어린 시절부터 나의 가치관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름 서울의 유명한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에 취업했을 때도, 너무 열심히 노력한 나 자신의 성취와 그 과정을 칭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면 친척들이 우리 집을 무시하지 않겠지?'와 같은 생각이 몰려와 안도감부터 들었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겪게 되는 고통을 나는 알게 되었다. 가정이 피폐해진다는 것이 아이들의 마음에 어떠한 상처를 주는지도 직접 겪어서 너무  안다. 그래서  걱정 없는 집안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무너지지 않고  가족의 버팀목이 되어주겠노라 결심했다. 항상 웃음이 끊이는 가족은 아닐지라도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은 절대 만들지 않겠노라 가슴에 새겼다.


20대의 나는  커서 그런 아버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나아가 나를 믿고 인생을 함께하는 동반자에게 죄의식이 들지 않도록,  스스로 경제적으로 당당하고 모두를 보살필  있을 때까지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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