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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 어느날 Nov 12. 2021

06) 회사는 애초에 나의 인생에 관심이 없었다.

회사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를 갈아 넣고 자책하면서 일했다. 그리고 그런 고된 인내의 시간 속에서도,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가끔 찾아오는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며 버텼다. 좋은 동료들과의 저녁 술자리, 상사들의 칭찬들이 나에게 가끔은 웃음을 주었고, 돌아보면 참 많은 것을 했다는 생각이 그래도 약간의 성취감을 주었다. 여전히 불안에 떨며 지내고 전화가 울리는 순간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만, 모든 사람들이 힘들게 버텨내듯 나도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회사는 나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고 보상해 줄 것이라고 여전히 믿었다.


하지만 또 한 번 회사는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갑자기 본사에서 예고도 없이 경영 진단, 소위 말하는 감사를 진행했다. 타깃은 내가 일하는 부서였다. 이곳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은 끊임없는 업무와 부족한 인력에 밤낮없이 일만 한 사람들이다. 그런 곳에 느닷없이 찾아와서 감사를 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깔끔한 정장으로 분위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 누가 봐도 도떼기시장인 이곳 현장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들은 이제 막 3년 차 사원인 나를 앉혀놓고 7시간이 넘도록 마치 죄인처럼 취조하기 시작했다. 업무상 크고 작은 과실이 있었던 모든 빈틈을 찾아 몰아붙였다.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왜 이렇게 했냐', '스스로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테고 누가 시켰냐'와 같은 질문으로 나에게 고자질을 유도했고, '너무 바쁘고 사람도 없는 열악한 환경인 건 다 아는데, 그래도 이건 실무자인 너의 과실이다.'와 같은 말들로 내 자존감을 깎아내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작금의 상황이 순식간에 나와 여기 구성원들의 탓이 되어있었다. 작은 클레임만 터져도 죄책감을 느끼던 나다. 나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이곳에 시간을 쏟아부었다.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밤늦게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건 일상이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소주 한 잔에 털어버리고 그래도 웃으며 일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왜 죄인처럼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 고생한다고 위로받지 못할 망정, 왜 다그침을 받고 있는 걸까? 아침에 들어갔던 감사실을 저녁에 나오면서, 억울함에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크게 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하아... 허무하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회사가 나의 콩깍지를 벗겨내고 현실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깨달음을 주었다.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항상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오면 불안하다. 대부분이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을 들락날락 거리는 아버지에 관한 어머니의 한탄,  죽어가는 아버지의 상태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너무  불안함을 느끼는 날이면, 집에서 오는 전화를 피하기도 했다. 뎌내지 못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받은 전화는 더욱 심각했다. 아버지가 응급실로 실려갔는데, 상태가 급격하게 너무  좋아져서 간이식을 당장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상황은 심각했지만 항상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때가 되면  아들로서 마지막 효도를 한다는 생각으로 나의 간을 이식하겠다고 수년간 다짐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은 충격을 주었다.


'이미 동생이 검사를 했고 검사 결과도 나왔어. 이식할 수 있으니까 날짜 잡히면 알려준대.'


나는 분노했다. 내가 이식을 해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어머니도 알면서, 한마디 의논도 없이 일을 처리한 것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차분하게 말했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일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잖아. 전화는 한 번 했는데 안 받길래 바쁜 것 같아서 그냥 더 안 했어.'


나는 말 문이 막힌 채 듣기만 했다.


'동생은 여기 같이 있으니까 나중에 관리하기도 편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너는 회사일 열심히 해.'


별 일 아닌 듯 말하는 어머니의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왔다 갔다 하는데도 나는 몰랐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란 이유로, 회사에 모든 걸 쏟아부은 채 주변의 아무것도 살피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이건가?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정신 병원에 급하게 들어갈 때, 응급실에 갑자기 입원할 때처럼 내가 있어야 할 순간에 항상 나는 없었다. 정신없이 일에 쫓기다 보니 나는 모든 일을 발생한 다음에 알게 되었다. 휴가를 써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에도 전화는 쉴 새 없이 왔다. 그 전화를 받아내느라 힘겨워하는 나를 보며, 오히려 어머님은 본인이 아닌 나를 더 가여워했을 것이다.


나는 넓은 현장 한가운데에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회사가 나의 인생을 장밋빛으로 보답한다고?  소중한 시간을 갈아 넣고, 매일을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 버텨온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보상받았을까? 보상은커녕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회사를 원망해야 할까? 회사는 나에게   번도 희생을 강요한  없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나의 희생에 대한 보상 또한 회사는 약속한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스스로 희망을 품었을 .  잘못이었다.  


그래, 회사는 처음부터 내 인생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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