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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늘 Dec 20. 2023

5) 장래희망

흑수저에게 돈의 의미

5) 장래희망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콩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건 동화 속에서나 있는 일이다. 어릴수록 아이들에겐 꿈의 한계가 없다. 미취학아동에서 유치원생이 되고 초등생, 중등생, 고등생, 대학생, 성인이 되면서 꿈에 한계가 생겨난다. 한 단계의 성장이 일어날수록 꿈은 더 작아지고 현실과 타협한다. 번개에 맞을 확률보다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는 확률이 낮다. 그걸 우린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우리들의 위 아 더 월드, 공통된 꿈은 대동단결 하나로 뭉쳐 통일을 이룬다. 어릴 때 꿈은 프로선수가 되고 스타가 되고 박사가 되고 발명가가 되거나 재벌이 되고 심지어 대통령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어릴 때 꿈을 이룬 사람마저로또 1등이 간절해진다.


흑수저로 태어난 사람들도 어릴 때 꿈을 꾼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꿈의 방향이 한차례 크게 변화를 겪는다. 가정환경이 부유하지 않을수록 발달하는 감각이 있다. 눈치. 눈치가 비약적으로 발달한다. 눈치라는 것은 없는 것보다 센스와 연결되므로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감각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눈치를 본다는 건 그들의 부모를 씁쓸하게 만드는 일임은 분명하다. 현실을 자각한 아이들은 꿈에 리밋을 장착한다. 착하고 현명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결단이다. 기지개를 켜고 다리를 촤라락 펼치고 싶지만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공간의 감각을 익히고 공기의 흐름을 느낀다. 하여 감각적으로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흑수저 어린이는 성장하면서 꿈도 눈치를 보며 꾸게 된다.


흑수저인 나도 눈치를 보며 꿈을 꿨다.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되면서 공부에 집착했다. 공부를 잘하면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가정교육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책과 학교교육에 진심이었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1990년대에도 사교육이 필요했다. 학원을 다니고 싶었지만 학원에 보내달라는 말은 입안에서 웅얼거리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의 수업과 자율학습만으로 성적을 올려야 했다. 한계가 있었지만 성적이 꾸준하게 올랐다. 성적이 올라도 나름의 꿈에 명확한 한계를 만들었다. '대학을 가고 싶다. 그러나 스스로 돈을 벌어서 가야 한다. 대학을 다닐 때도 스스로 등록금을 만들어야 한다.' 리밋 속에서도 꿈은 계속됐다.


그러나 대학을 가고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하려는 건 나만의 꿈이었을 뿐이다. 내가 이미 눈치껏 꾼 꿈과 부모의 바람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 부모가 능력이 없는 건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서글픈 일이다. 제자식이 귀하지 않은 부모가 있으랴? 자식의 성공이 즉 자신의 성공인양 자신을 투영하는 부모도 많다. 하여 자식에게 기회와 성공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하려 노력하는 부모들도 있다. 그러나 가난의 굴레는 순수하고 거칠다.


가진 것 없는 부모는 자식에게 가혹해지기도 한다. 부모의 사정이 안 좋을수록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와 타협한다. "나는 자식들 당연히 사랑해. 나는 최선을 다했어. 지금 우리의 가난은 가족들 모두의 책임이야. 자식들은 자신의 몫을 하는 것뿐이야. 나도 그렇게 살았어" 아름답게 포장된 자기 합리화는 간편하고 단단하다. 그렇게 가난한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무능의 책임을 전가시킨다. 부족한 부모는 필연적으로 잔인해진다.


중학생 때의 나의 꿈은 어쩌면 당연한 듯 일상적으로 벽과 마주했다. 미성년자의 의지는 쉽게 꺾인다. 미성년자의 보호자인 부모의 의지가 곧 미성년자인 자녀의 의지를 대변한다. 나의 부모는 자식을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다만 가정의 보템이 되는 존재이길 바랐다. 큰언니와 오빠는 중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을 했다. 작은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하겠다고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막내인 나는 아들도 아니기에 더욱더 부모에게 배움이나 대학과 거리가 있었다. 딸은 출가외인이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돈을 벌어서 집에 보템이 되어야 했다. 


흑수저인 나의 장래희망은 벽을 만났다. 벽을 넘으려면 담쟁이라도 되어야 하는가? 꺾인 꿈은 바짝 말라 꽃잎이 떨어지고 마른 홀씨가 되었다. 시간이 필요하다. 다행히 마른 잎에도 홀씨는 생긴다. 홀씨가 되어 하늘을 날며 꿈의 방향을 잡아 땅을 찾아 유랑한다. 흙을 만나서 홀씨가 뿌리를 내리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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