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세대

불확실성의 시대에 태어난 세대, MZ

by 장혁

요즘 세대는 참 많이 불려 나온다. 물론 X세대, Z세대라는 명칭이 있었던 것처럼 언제나 한 시기에 가장 '젊은것들'로 분류되는 세대에게는 마땅한 별명이 붙여지고 그들의 행동이 윗세대와 다른 것에 대한 놀라움이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것들, 'MZ세대'는 선배들이 젊은 세대일 때 보여줬던 파격적인 모습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는 듯하고, 또 파격적이라고 생각되었던 그들 선배 세대가 보기에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새로움으로 자신들의 세대를 널리 알리고 있다. 예전과는 달리 인터넷이나 핸드폰, SNS처럼 한 명의 영향력이 수천, 수만 명의 영향력보다 커질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져 MZ세대는 그들 세대가 가지고 있는 비중 이상으로 강한 영향력을 사회에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영향력에 발맞춰 언론이나 정치, 그 외 모든 사회적 영역이 앞다퉈 MZ세대를 분석하고, 자신들만의 결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MZ세대를 바라본 사람들에 의하면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분방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며 재미와 단순함을 추구한다. 또 그들의 별칭답게 모바일 기기를 잘 다루며, 책이나 그림보다는 영상으로 정보를 습득한다.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크다. 자신들의 소비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불평불만이 많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특징을 가지게 된 원인으로 어릴 때부터 모바일 기기를 접하게 된 시대적 배경, 부모 세대보다 더 소득이 적어진 저성장 환경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며 자랄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 요인 등이 언급된다. 어느 시기에도 새로운 세대는 그 세대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정의되기 마련이다. 자신들의 성장 과정에 비춰봤을 때 달라진 모습, 달라진 환경이 주를 이루며 자신들의 관점에서 새로운 세대가 가지는 성격을 정의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서나 새로운 세대 자신들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끼는 것이 그렇듯, 또한 요즘의 새로운 세대는 마치 그 끝에 서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듯 자신들을 정의하는 다른 세대의 모습에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MZ세대를 정의하고 싶고, 또 그 정의를 통해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마음을 사로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결과이겠지만 그들의 성격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정의할 수 없음'이다. 정의할 수 없다니 그 무슨 해괴한 결과인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어떤 명제는 답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답이 되기도 한다. MZ세대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세대이다. 확실성의 세계가 세계대전과 전쟁을 거쳐 무너진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치관을 형성했고, 그들의 가치관에는 확실한 것이 없다. 확실한 것이 없다는 게 그들이 모호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확실한 하나의 정답을 추구하는 세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에게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또 주어진 조건에 맞춰 가장 좋은 것이 있을 뿐이다. 세상은 불확실하기에 언제나 통용되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 중 누군가는 복지에 있어서는 보수, 자연에 있어서는 진보일 수 있다. 인종 차별에 대해서는 완강히 반대하지만 성차별에 대해서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모든 사안은 개별적이고 확실한 포지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불확실함이 그들의 성격이고 그렇기에 정의할 수 없음이 그들의 정의이다. 그러니 'MZ세대는 자연에 대한 경각심이 큰 세대이다'라는 말은 틀렸다. 큰 사람은 크고 작은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자랐기에 자신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집단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더 크다. 그러니 그중에 자연에 경각심을 가지는 사람은 그 경각심을 더 크게 드러낸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내가 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말하고, 행동한다. 물론 반대로 그렇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자신의 생각을 더 크게 드러낸다. 개별적인 생각이 더 크게 눈에 띌 뿐, 그들의 선택과 의견은 여전히 집단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들을 분석하는 일은 부질없다. 하나의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 게 그들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들이 좋아한다고 알려진 가치를 부르짖을 필요가 없다. 그 가치가 자기 자신이 느끼기에 옳다면 지지할 것이고 옳지 않다면 지지하지 않는다. 첫 번째 사안에서 그들 중 누군가가 선호하는 것을 맞춰지지를 얻더라도 두 번째 사안에서 선호하는 것과 의견이 다르다면 지지하지 않는다. 개별적인 상황과 문제에 대해 고민할 따름인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그들의 마음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부단히 노력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적절하지 않을까. 그냥 자신이 좋은 것을 선택하고, 자신이 믿는 것을 행하면 된다. 그렇다면 그 선택과 믿음에 의견을 같이 하는 누군가는 그들을 따를 것이고 의견을 같이 하지 않는 누군가는 그들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게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억지로 그들의 의견을 맞추기 위해 말하고 행동하는 가식이 밝혀졌을 때, 그들은 자신들과 그가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 더 이상 개별 사안에 대해 의견을 같이 하거나 같이 하지 않는 판단도 없이 그들을 저버릴 것이다. 그저 마음 가고 싶은 대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개별 사안에 대한 의견은 다르더라도 저들이 우리와 같이 세상에 정답은 없고, 나는 내 앞에 놓인 문제에 대해 나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판단을 하면 될 뿐이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의견은 달라도 같은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연대감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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