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시대

시대는 철학에 선행한다

by 장혁

철학과 시대는 맞물려 있다고 한다. 그 어떤 위대한 철학자라고 해도 그가 살던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소크라테스,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와 같은 철학자의 말과 글을 읽을 때 복잡함이 아닌 어떤 탁월함을 느끼기 어려운 이유도 거기서 기인한다. 그들은 그들이 살던 시대의 문제를 정리하고 체계화 한 철학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철학이 밑바탕이 되어 이미 변화해버린 시대 안에서는 그 탁월함을 이해할 수 없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바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아무튼 철학과 시대상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철학과 시대 중에 무엇이 선행하는 것인가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아마 시대일 것이다. 시대는 마치 동물이 진화하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 달라진다. 진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에게 세계는 단 하나뿐이기 때문에 여러 돌연변이 중에 하나의 시대가 적자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시대가 그 자신만의 돌연변이를 지속적으로 만나 변화하고, 또 적응해나간다는 점이다. 시대가 맞이하는 변화의 원인은 다양하다. 거대한 자연현상이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고, 때로는 인간의 역사를 바꿔 놓는 몇 사람들의 선택일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수많은 작은 현상이 마치 나비효과처럼 예상치 못한 파급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과학 기술, 경제 체제가 자신들의 환경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조차 충분히 예상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게 인간의 활동 자체가 새로운 돌연변이가 되어 시대를 바꿔 놓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가 살던 시대가 어떤 변수에 의해 달라지게 되면, 그때 인간은 '철학의 부재' 상태에 놓인다. 과거에 그들이 세상을 이해하던 방식은 새로운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같은 철학 하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거대한 실수를 하기도 하고, 눈치 빠른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의 철학이 무엇이 될지 알지 못하면서도 그들만의 감으로 생각, 삶의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철학은 부재해도 더 빨리 적응한 사람들은 새 시대에서 자신들만의 성공을 이룩한다. 그렇게 철학의 부재 상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고 또 누군가는 앞서나고, 다른 사람들은 뒤쳐지는 가운데, 시대의 지성이 등장한다. 그는 새로운 시대가 이전과 다른 점을 명확히 포착한다. 그가 포착하는 것은 그저 감이 아니다. 새 시대가 이전 시대와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다른지 인지하고, 이를 언어와 논리로 체계화한다. 그렇게 새 시대의 철학이 만들어진다.


온 세상이 미지의 영역에 가려져 있던 오랜 과거에 사람들은 미지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그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신의 세계, 현실의 세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사람들에게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철학을 선물했다. 자연에서 미지의 영역이 점점 걷혀 가던 중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믿으면서도 또 신의 섭리를 거스를까 하는 두려움에 혼란스러웠다. 그들이 혼란스러워도 인간이 만들어 낸 과학, 예술은 점점 더 발전했고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자랑스러웠다. 데카르트, 칸트와 같은 이성 중심의 철학자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특별함을 인정하는 철학을 주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홀로코스트로 무너진 이성 중심의 세상은 다시 '철학의 부재'에 놓였다. 더 이상 신도, 인간도 그들에게 답이 되어 주지 못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철학을 해체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철학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새 시대를 완전히 설명하기도 전에 시대를 자신의 변화 속도를 올렸다. 시대는 산업화와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무수히 많은 돌연변이를 아주 짧은 시간에 만들어냈고,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새로운 철학자가 등장하고, 새로운 철학이 세상을 설명하기도 전에 기존의 세상은 없어진다. 새로운 세상을 설명하려고 하면, 이미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시대는 언제나 철학에 선행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때는 철학이 시대를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철학은 자신을 앞질러가는 시대를 그저 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사람들은 '철학의 부재'상태에 계속해서 놓이게 되었다. 오늘의 혼란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철학이다. 철학은 더 빨라지고, 더 가벼워져야 한다. 자신을 앞질러가고 있는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묵직하게 움직이지 말고, 가볍게 쫓아가야 한다. 모든 것을 설명하기보다는 변화 자체만을 이해하고, 달라지는 것을 설명하려 해야 한다. 그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이고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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