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태도

불확실성의 시대를 이해하는 답

by 장혁

요즘 우리에게는 정해진 것이 없다. 인간은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세상을 바꿔가는 속도는 그들 스스로도 주체하기 어려워졌다. 우리가 상상하는 내일의 모습은 이미 어제가 되었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했더니 저렇게 되는 것을 넘어서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세상은 정해진 것이 없고, 그래서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또, 그런 우리에게 이 불확실한 세상을 다룰 만한 무기가 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믿던 것들은 그 빛을 잃어가고 있고 누군가 우리에게 새로운 빛을 가져다줄 것 같지도 않다. 파도가 거세게 치는 망망대해에 뚝 떨어져 버린 돛단배가 우리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물론 우리가 믿던 것들이 무너져버렸을 때 실존을 이야기하던 철학자들은 우리가 놓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고, 그래서 인간 실존의 문제는 상상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답을 찾고 살아가야 할까.


어쩌면, 아마도 답은 처음부터 없었을지 모른다. 자연은 대체로 답이 정해놓지 않는다.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게 자연인데 인간이라고 다르지 않지 않을까. 오히려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인간 세상은 자연을 그들의 생각에 맞춰 몇 번씩 더 꼬아버리기 때문에 복잡하면 더 복잡했지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 세상에도 답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렇게 답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능적으로 불확실한 것보다는 확실한 것을 원하기에 그들 나름대로의 답을 정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답이 없더라도 상상 속의 답을 공유하고, 다 같이 믿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능력이기에 그게 가능했다. 우리는 오랜 시간 하나의 답을 공유하고, 그것이 처음부터 답이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물론 애초에 없었던 것을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가짜 답은 무너질 수박에 없었다. 우리가 만들어 낸 답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그때마다 세상은 혼란에 빠졌다. 혼란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혼란 속에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답이라고 믿던 것들에 회의감을 가지기 시작했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고정관념을 흔들어서 틀을 깨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혼란을 정리한 뒤의 인간은 아름다운 창조물을 남겼다. 그리고 그 창조물에 힘입어 인간은 새로운 답을 찾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답을 공유하고, 또 믿는 시간 동안 세상은 평화로운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답도 깨지게 되어 있다. 답이란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또다시 답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은 다 부서졌다. 하지만 이젠 정말 답이라는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쓸만한 것들을 다 가져다 썼는데 다 부서져버렸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대는 정해진 답이라는 생각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누가 쉽게 하나의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제는 답보다는 태도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확실하지 않은 것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정해진 답이 아니라 이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태도, 그 태도가 답을 대신할 수 있는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그토록 오랜 시간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답을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답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고, 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태도만이 그 끝에 남을 듯하다.


불확실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이것이거나 이것이 아니라면 저것이라고 말하는 딱 잘리는 태도가 아니라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는데, 지금 당장으로서는 이것일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라고 애매해 보이지만 더 솔직한 대답을 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한 시대다. 그리고 처음부터 세상은 그렇게 존재해왔다. 하나의 확률이 더 높아 보일 때 세상은 단지 그것의 확률이 반대편보다 조금 더 높다고, 그럼에도 반대편일 확률이 존재한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인간은 확률이 높아 보이는 쪽이 마치 정답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둔 정답의 틀이 더 높은 가능성을 보이는 것과 일치할 때가 있다면 호들갑을 떨며 '거 봐 내가 이게 답이라고 했잖아'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세상은 애초에 그런 불연속적인 존재로 만들어져있지 않다. 자연은 연속적이다. 연속적인 자연을 인간의 눈대중으로 어느 순간에 끊어놓은 게 우리 세상의 틀이다. 물론 인간이 받아들이기에 불연속적이고, 이분법적인 개념이 직관적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게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끝에 와 있는 오늘날, 이제 더는 불연속적인 개념이 우리에게 답을 해주기 어려운 때가 온 듯하다.


불확실한 것을 있는 그대로, 연속적인 세상을 연속적인 개념 그대로, 답이 아니라 적당한 지점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태도가 오늘날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답,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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