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그리움 사이의 틈에서
나는 대지이고 싶다
얼어 있는 마음, 말라버린 가슴에
비가 깊숙이 스며들게 하여
잠든 생명들이 내 안에서 깨어나게
움츠린 단어들에 싹이 돋아
한 편의 시로 내 몸을 타고 자라나고
물먹어 촉촉해진 가슴엔
사랑 하나 심고 싶은 설렘이 다시 움트게
그리하여 나의 대지에 잎이 돋고
가지가 오르고 꽃이 피게
하늘을 적시고 나서 땅을 적시고 나서
마침내 나를 적셔다오
그리하여 내 몸이 젖은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르게
그리하여 속에서 스멀거리는 것이
꽃인지 그리움인지 모르게
창밖 풍경에 물기가 차오르더니 기어코 방울져 떨어진다.
아, 이 비는 이제 정말 봄비구나 싶다.
얼고 메마른 땅 밑에선 지금쯤 수많은 생명이 꿈틀대고 있겠지.
이 비가 얼마나 달까. 땅은 참 좋겠다. 저 단비를 온몸으로 받아낼 수 있어서.
나도 이 봄의 대지처럼 기분 좋은 비를 만나고 싶다.
지치고 말라 있는 내 마음에도 지금은 봄비가 필요하니까.
지난가을에 말라버린 풀처럼 축 처져 있는 내 영혼.
하지만 저 마른풀들 밑에선 쑥도, 달래도, 제비꽃도, 봄맞이꽃도
기지개를 켜며 깨어날 준비를 할 거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우리가 세상과 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내가 저 비를 보며 "나도 대지이고 싶다"라고 중얼거리는 순간,
나와 저 땅의 경계는 슬그머니 허물어졌으면...
비는 땅을 적시고, 그 땅은 다시 나의 마른 마음을 적시게 말이다.
나도 대지이고 싶다. 그렇게 다시 깨어나고 싶다.
내 안에 시들어버린 것들을 깨끗이 씻어내고,
니체가 말한 ‘운명애’처럼 이 슬픔까지 기꺼이 품어보고 싶다.
그래야 떠난 엄마도 내 안에서 다시 숨을 쉬고, 예쁜 그리움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 테니.
비에 젖은 대지가 제 속을 긁어 꽃을 피우듯, 나도 이 3월의 비를 듬뿍 머금고 내 안의 그리움을 예쁜 문장으로 길러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