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호르몬에 속고 싶지 않아

우울증 환자의 PMS와 생리통 이겨내기

by 장권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생리전증후군(PMS)라는 것은 인터넷에만 존재하는 증상인 줄 알았다. 생리통도 유전에 따라, 심지어는 복불복으로 발현된다는데, 그렇게 치면 나는 로또도 아닌 파워볼 당첨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심해진 생리로 인한 복통은 나를 찬바닥에 드러눕게 했고, 생리통을 겪는 여자라면 모두 아는, 시작 직전 배가 싸한 아픔은 늘 재앙의 징조였다. 진통제 없이는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조차 힘들었고,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지엔 식스 이브 정기 복용자로 살아가고 있다.


20대 후반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 PMS는, 그간 내가 그 존재를 모르고 살았던 것에 대한 복수를 하듯 집요하게 괴롭혔다. 앞선 에피소드에서도 가볍게 언급한 바 있지만, 이번 화에서는 그 악랄함을 자세히 얘기하고 싶다. 그에 앞서 생리 주기에 따른 생활 패턴과 느낌을 간단히 공유한다.


만약, 내 생리 기간이 전월 25일 ~ 말일까지라고 가정했을 때,


첫 주(1~7일)엔 날아갈 것 같다. 생리통도 없고 생리대를 차고 있는 불편함에 더 이상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 생리 중 약해진 잇몸을 회복하는 단계다.


둘째 주(8~15일)에는 생리를 안 하고 있는 상태가 익숙하다. 바보 같이 또 곧 다가올 재앙을 잊어버리곤 영원히 이 상태가 유지될 것처럼 행동한다. 미리 걱정한다고 안 아픈 건 아니기 때문에 사실 걱정하는 게 더 이상하긴 하다.


셋째 주(16일~24일) 갑자기 허리가 우릿하게 아프다. 좌우 난소 방향이 격월마다 번갈아가며 찌릿하게 아프다. 가스가 자주 차는데, 나는 특이하게 배란일 하루는 전혀 변의가 없다. 배란통을 선명하게 느끼는 편이다. 그리고 생리가 시작일이 다가올수록 아랫배가 찌르듯 아픈 느낌이 간헐적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죽음의 PMS가 시작된다.


넷째 주(25일~말일)에는 본격적으로 블리딩 파티다.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하다. 배란기부터 이어져 온 잇몸 통증이 있고, 자궁이 부어 장을 자극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배변 활동이 어렵다.



이 PMS가 얼마나 지독한 놈이냐면, 아침 점심 저녁 꼬박 진통제에 의존하는 생리 기간이 훨씬 편하다. 그의 악랄함을 서술해 보겠다.


1. 잠이 안 온다.

정신이 또렷하게 깨어 있는 상태라면 차라리 축복받은 편이다. 무척 피곤하고 졸려서 잠에 들기 위해 전신에 힘을 빼고 누우면, 한 신체 부위가 당장에 긁지 않고는 안될 정도로 가렵다. 모기를 물렸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물린 상처는 열감이 있고 피부 표면의 반복적인 가려움이라면, 이 가려움은 피부 깊숙이, 마치 신경이 간지러운 것 같은 깊은 가려움이다. 그 가려움이 너무 강렬해서 무시하고 잘 수 없을 정도다. 잠이 들려는 상황에서 등이 간지러우면 긁기가 너무 귀찮지만, 무시하고 자려고 해도 그 가려움이 온 잠을 깨우고 신경을 건드리고 심지어 심장까지 빨리 뛴다. 피부 속에 가려운 요정이 사는 것 같다. 해결하지 않으면 새벽 내내 긁어 달라고 운다. 근데 이 놈이 한 부위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전신을 돌아다닌다. 등을 간지럽혔다가, 갑자기 아킬레스건을 간지럽혔다가, 갑자기 목 뒤에 올라타거나 하는 식이다. 쫓아다니며 긁어대다 보면 새벽 내내 침대 위에서 브레이킹 댄스를 추게 된다. 이 난리통에 잠이 올리가 없다. 이걸 몇 시간을 반복하다가 새벽 늦게 잠이 들거나, 아예 잠을 포기하게 될 때도 있다. 가려움을 우습게 보면 큰코다친다.


2. 죽고 싶어 진다.

이 브런치북을 정독한 독자가 있다면 충분히 알고 있는 정보겠지만, 나는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우울증상이 많이 개선됐다. 약을 복용하면 웬만한 상황에서도 차분함과 밝음을 유지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눈물이 터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선천적으로 여리고 눈물이 많은 탓이니 우울증상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런데, 이놈의 PMS 기간만 되면 여전히 죽음이 말을 건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ADHD 환자는 호르몬에 따른 감정 변화가 급격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이 때문에 PMS 또는 생리 기간에 불안장애 약을 추가 처방받고 있다. 언젠가 PMS로 인한 불면과 불안증세로 힘들 때, 밤늦게 썼던 글을 공유한다.


죽고 싶은 마음은 기침처럼 목을 간지럽힌다

목구멍에 걸린 거미줄 친 가래

힘껏 뱉어내도 시원하지 않아 침을 꼴깍 삼켜본다

햇살을 받아 개운한 오전과 달리

밤만 되면 그리 기침을 앓아 댄다

숨을 턱 내쉬어도 그 마음이 잘 가시질 않는다

오래된 기분이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남들은 기침 한 번 없이 편하게 잔단다

나는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아득하다

콜록이며 가래를 걷어내다 지쳐 잠이 든다


나에게 죽음에 대해서 물어보면, 나는 항상 죽음이 목구멍에 있다고 말한다. 찐득한 가래처럼 아무리 기침을 하고 침을 뱉어도 잘 빠지지가 않는다. 목이 답답해져 오면 수면 유도제와 불안 장애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죽음을 상상하긴 해도 시도하지는 않는다. 호르몬 때문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계속 알려준다. 삶에 강한 의지가 있고 죽고 싶지 않다는 걸 나에게 끊임없이 말해준다. 그래야 호르몬에게 속지 않는다.


3. 약해져 가는 잇몸, 휴화산이 된 대장

생리로 인해 치은염과 잇몸 통증이 유발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월경성 치은염'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호르몬으로 인해 혈액 분비량이 증가해 수만 가지 혈관이 얽혀있는 잇몸을 예민하고 약하게 만든다. 어쩜 나는 이것까지 당첨됐다. 평소에 양치 후 워터픽을 통해 깨끗이 치간을 씻어낸다. 몇 년간 해와서 평소엔 시원하게 이물질만을 제거하지만 PMS 및 생리 기간에는 잇몸이 부어있어 작은 수압에도 피가 난다. 월경성 치은염은 생리가 끝난 직후에도 유지되는 경우가 있어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가라앉는다. 열심히 이를 닦고 열심히 피를 흘린다. 그러면 다행히 곧 튼튼 잇몸으로 되돌아간다.


PMS 기간에는 마그마가 속에서만 흐르는 휴화산이 된다. 비유를 제외하고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가스만 차고 배변 활동이 없다. 배란일 단 하루만 그렇다. 나는 인생에 변비라는 것을 모르고 산 사람인데, 배란일 하루는 변의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 대신 뿡뿡이처럼 쉴 새 없이 아랫배에 가스가 찬다. 바깥 생활을 하는 날이면 불편할 정도로 배가 불룩해지는데, 이때 배란통이 찾아오면 그야말로 환장의 콜라보다. 통증이 생리통에 버금가기 때문에 굳이 참기보단 진통제 한 알을 먹는다. 그렇게 지각 아래에서 에너지를 응축한 휴화산은 다음날부터 생기를 찾고 활화산이 되어 에너지를 터뜨린다.


나는 요즘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흠뻑 빠져있는데, AG SQUAD 크루의 루시 베이비라는 멤버를 필두로, 영어권 크루 멤버들이 감탄사로 'period!'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한국 신조어로 '찢었다!' 정도의 느낌인데, 영어로 온점이 period이므로 '마침표를 찍었다', '방점을 찍었다'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영어권에서 period를 생리 기간을 뜻하기도 하는데, 나는 period가 period!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감정, 호르몬, 컨디션 모든 게 period!




keyword
이전 06화평소랑 다른지(아야!) 나는 잘(쿵!) 모르겠는데(흘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