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
샤이니 금지령을 당했다. 내 청춘의 절반을 함께 한 빛이 나는 존재. 좋아하는 연예인을 향해 흔히 빛이 난다고 표현하는데, 그룹명 자체가 그러하니 달리 수식하는 것도 어렵다. 금지 당한 이유는 내가 트라우마 상황을 직면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된 증상의 원인이 된 트라우마는 크게 3가지다.
1. 가정환경에 따른 성격 형성
2. 우상의 사망에 따른 충격
3. 직장 생활의 어려움
위 세 가지 원인으로 우울증상이 발현될 때, 선생님은 궁극적 피하기를 처방하셨다. 더는 아픈 기억으로 남지 않을 만큼 원인들과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멀어져야 하는데, 사실 쉽지 않다. 쉬이 떨쳐낼 수 있는 것들이라면 이렇게까지 아파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시간과 자본을 들여서 나를 치료하는 데 전력을 쏟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트라우마를 안겨 준 사람들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와 상성이 맞지 않았을 뿐이고, 내가 아프고 불편했던 만큼 나도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다. 어떠한 관계도 일방통행일 수는 없다. 다만 내가 그들보다 더 힘이 약하고 여려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고, 그 결과 흉터가 남았을 뿐이다.
나는 처방대로 반복해서 싸움이 발생하는 가족과 최소한의 대화를 나눠야만 했고, 전 직장에서의 트라우마를 떠올리지 않으려면 직장 동료들과 연락을 최소화해야 했다. 잘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가족을 사랑하고 필요로 하며, 전 직장 동료들과 대화하는 게 즐겁다. 그리고 여전히 샤이니는 내 우상이다.
깊은 상처가 생겨 피가 고인 자리에 딱지가 앉는다. 딱지를 굳이 떼지 않아도 새로이 차오르는 살이 그 빈틈을 메운다. 시간이 지나 상처는 흉터로 바뀐다. 나는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자꾸 딱지를 뗐다, 대부분 타의에 의해서지만. 아물지 못한 상처에 새살이 차오르기도 전에 그 자리를 피와 진물이 채운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 나을 틈이 없다. 마음에도 딱지가 앉을 수 있도록, 빈틈에 새살이 차오를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
얼마 전, 샤이니 데뷔 17주년을 기념하여 '샤이니 위크'라는 이벤트가 개최되었다. 그 일환으로 '샤이니 월드'라는 이름으로 그간 해오던 월드투어 콘서트 시리즈를 유튜브 채널에서 스트리밍 했다. 직접 가서 관람한 콘서트도, 직접 관람하진 못했지만 익히 알고 있는 무대를 나날이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오랜만에 듣는 수록곡이 반가웠고, 늘 좋아했던 곡들은 새로이 들렸다. 그들은 늘 무대를 꽉 채운다. 전력을 다한다. 피부는 늘 땀에 푹 젖어 반짝이고 옷이 찢어져라 춤을 춘다. 언젠가 열심히 해서 문제다. 그게 문제다. 그것 때문에 별안간 오열을 하게 된 것도, 어쩌면 필연적인 전개였다.
몇 달간 이어진 진료 과정에서 그날 이전엔 한 번도 샤이니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사실은'으로 시작해 '너무 힘들었거든요.'로 끝난 내 고백에 선생님의 타이핑은 더 빨라졌다.
"어떤 것 때문에 눈물이 나셨나요?"
"무대에서 목이 터져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하는데, 제가 그 모습을 정말 좋아했던 건데요. 결말이 자살이었다는 게... 저렇게 열심히 살아도 끝이 그렇다면, 내가 뭘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나의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진 않지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며 내 생각을 바로잡아 주셨다.
"그 선택을 열심히 산 것의 결과로 결부 지으면 안 돼요. 그분이 열심히 산 것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으로 승화하셔야 해요. 트라우마와 감정이 결부되어 그 슬픔이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8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슬픈 감정을 느끼시나요?"
"당시에 제 개인적인 힘듦도 있었고, 그 일이 함께 겹쳐서 그런 것 같아요."
"아직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신 것 같아요. 오늘부터 샤이니는 안 보도록 할게요."
"... 살아있는 멤버도요?"
"그분을 떠올리게 만든다면요."
"네."
그렇게 금지당했다. 그날은 신곡이 나온 지 이틀 차였다. 너무 짧은 시간 들어서 아직도 그 노래 가사조차 외우지 못한다. 그의 목소리가 담긴 소중한 음원이지만, 그 기억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전력으로 피해 볼 예정이다. 어쩌면 다행인 건, 다른 멤버들이 나 혼자 산다에서 활약하고 있는 요즈음, 그들을 본다고 해서 그가 떠오르진 않는다. 그렇다면 5명의 무대와 노래만 피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명곡들이 너무 많다. 학창 시절 내 감수성을 키운 것도, 가창력과 춤 실력을 키운 것도 다 그들 덕분인데. 외로운 서울의 밤에 친구가 되어준 것도 그의 라디오 속 음성이었는데.
2개월 정도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그들의 노래를 듣지 않고 있다. 시간이 지나 슬픈 감정만 잊히면 좋을 텐데, 그들에 대해 알고 있던 소소한 정보와 추억도 잊을까 두렵다. 그래도 좋게 생각을 하자면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더는 울지 않는다는 것. 조금은 미소 지으며 글을 쓰고 있다는 것.
참, 회사 사람들은-지금도 연락 중인 세모와 네모를 제외하고- 연락을 끊었다. 애초에 퇴사 직후로는 연락을 이어가지 않긴 했지만. 회사 근처에 들러도 전력을 다해 도망 다닌다. 의병 제대한 병사가 전쟁터에 굳이 발을 들일 필요가 있나. 나를 힘들게 했던 그들을 완전히 잊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든 더는 신경 쓰지 않고 내 삶만 바라볼 것이다. 나중에 우연히 만나더라도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나를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