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생초보 가드너다
손바닥 만한 마당이 있는 지금의 집으로 이사와 가드닝이란 걸 시작하면서, 사실 장미 키우기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작은 마당에 장미는 무슨. 야생화나 몇 포기 심고, 수국이면 소원 성 취지 뭐’ 이런 생각이 먼저. 그리고 장미가 각종 병충해에 유독 약해서 가드닝 고수들도 기피하는 식물 1순위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당에 꽃을 심기 시작하고 또 여러 가드닝 고수들의 유튜브를 보다 보니 장미가 끝없이 등장했다. 그리고 가드닝 고수들의 유튜브 영상에 등장하는 장미들은 모두 하나 같이 아름답고 탐스럽고 건강했다. 또 동네 산책을 할 때마다 몇몇 집에서 키우고 있는 장미들이 나를 자극했다. 나도 장미를 키우면 이렇게 멋진 정원이 될 수 있겠지?
독일 장미는 추위에 강하고, 각종 병과 벌레들의 공격에 강해서 상대적으로 키우기가 쉽다고?
그러다 어느새, 홀린 듯이, 장미 키우기와 관련된 정보들을 검색하고 있는 나. ‘장미는 데이비드 오스틴으로 유명한 영국 장미와 코르데스로 유명한 독일 장미가 있군. 영국 장미는 초보들에게는 조금 난이도가 있고 독일 장미는 우리나라 기후에 더 적합. 독일 장미는 추위에 강하고, 각종 병과 벌레들의 공격에 강해서 상대적으로 키우기가 쉽다고?’ 좋아, 그렇다면 독일 장미로 간다!
그래서 또 판매처를 검색해 봤더니 마침 우리 집에서 가까운 일산에 독일 장미의 성지라고 불리는 ‘로즈팜’이란 곳이 있었다. 그런데, 장미를 심으려면 가을이 제철이라고 해서 기다리고 기다렸다. 10월이 오기를.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
장미라는 아이템을 파밍 하기 위해 와이프님과 2인 파티를 맺고 일산의 로즈팜 던전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오오 여기는 말로만 듣던 장미의 천국. 수많은 장미들 중에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퀸 오브 하트'라는 주황색의 화단 장미와 '벨렌 슈필'이라는 연분홍빛 관목 장미를 하나씩 데리고 왔다.
하지만, 장미를 심기 위한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잘 자라고 있던 러시안 세이지를 들어내고 화단 장미 퀸 오브 하트를 심었다. 그리고 마침 경계목 하나가 죽어 버려서 죽은 경계목 자리에 관목 장미 벨렌 슈필을 심었다.
그렇게 작년 10월, 내 인생 처음으로 장미라는 식물을 정원에 심었다. 월동은 잘할까? 병은 안 걸리고, 벌레에 안 뜯기고 생초보 가드너의 정원에서 잘 버텨 주긴 할까? 노심초사의 지난겨울과 봄.
다행히도 겨울을 잘 버틴 장미는 4월부터 본격적으로 어린잎을 내기 시작하더니 쑥쑥 자라났다. 특히 퀸 오브 하트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반면 벨렌 슈필은 꾸역꾸역 조금씩 조금씩 아주 느리게 성장했다.
인생 처음으로 키워 본 장미라 그런가, 유난히 더 이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반년만에 몸집을 어마어마하게, 건강하게 키운 퀸 오브 하트는 대망의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그것도 가지마다 가득. 그리고 5월 23일, 드디어 퀸 오브 하트가 커다랗게 꽃을 피웠다. 영롱한 주황색 색을 뽐내며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이 가득한 것만 같은 꽃 모양. 장미들은 모두 아름답지만 인생 처음으로 키워 본 장미라 그런가, 유난히 더 이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5월, 장미의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보름이 넘게 피고 지던 퀸 오브 하트는 아쉬운 마음 가득 안고 진행된 꽃봉오리 자르기, 일명 데드 헤딩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여전히 꾸역꾸역 느리게 느리게 성장 중이었던 벨렌 슈필은 6월 중순이 지나서야 꽃봉오리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것마저도 달랑 세 개뿐이었다.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니 벨렌 슈필이 초기 성장이 느리기로 유명한 아이였다. 하지만 2~3년 지나 제대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왕성하게 자라나 연분홍 도자기 색의 꽃을 오래도록 보여 준다고 하니 기대가 가득이다.
자! 이렇게 두 그루의 장미에서 꽃을 피워내다 보니 자신감이 가득. 이제는 더 많은 장미를, 더 다양한 장미를 수집해서 키우고 싶어 진다. 하지만 우리 집의 정원은 손바닥 정원. 장미를 더 심을 곳도 없는데. 더 큰 마당, 더 큰 정원이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아직 생초보 가드너인데.
추신. 장미 이야기만 해서 다른 가드닝 이야기도 잠깐.
월동을 잘 한 수국이 꽃망울을 맺고 6월에 만개했다. 작년과 비교해 엄청나게 큰 꽃봉오리. 엔드리스 섬머 수국 만세! 지난겨울 월동을 역시 성공적으로 마치고 마치 나무가 되어버린 것 같은 잉글리시 라벤더는 꽃들을 한가득 올렸다.
지난봄에 뿌리, 숙근을 사서 심었던 새로운 아스틸베들과 월동을 한 작년의 아스틸베들이 모두 함께 폭풍 성장을 하더니 형형 색색의 꽃들을 피우고 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2년 5월 16일~5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