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생초보 가드너다
우리 집 마당은 예닐곱 평 밖에 안 되는 손바닥만 한 공간이지만 마당의 한쪽이 이국적인 야생화들로 가득 차 있는 그런 정원을 꿈꾸었었다. 가드닝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타샤 할머니의 정원과 같은.
그런 꿈을 안고 야생화를 키우기로 결심을 했지만, 가드닝을 하면서 풀 한 포기, 돌 한 덩이도 모두 돈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을 좀 해보다가 꽃들의 모종 사는데 들어가는 돈을 아껴 보기 위해 야생화 씨앗들을 마당에 심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조사를 해보니 가을에 씨앗을 뿌리는 가을 파종과 봄에 씨앗을 뿌리는 봄 파종, 두 가지의 파종 방법이 소개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씨앗을 마당에 뿌리면 그냥 싹이 쉽게 날 것이라 생각하고 “그래, 가을에 뿌려도 되고 봄에 뿌려도 된다, 이 말이지?” 이 문장만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
그래서 작년 10월 중순쯤 루드베키아, 꽃양귀비, 베르가못, 샤스타데이지, 수레국화 등의 씨앗을 인터넷으로 구입한 후 급한 마음에 후다닥 우리 집 작은 마당에 씨앗들을 뿌렸다. 이렇게 마당에 직접 씨앗을 뿌려 꽃들을 키워 내는 것을 가드너들이 '노지 직파'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곧 10월이 끝나고 11월의 늦가을을 지나 12월 겨울이 시작되었다. 싹들은 돋아날 기미가 안보였다. '아, 씨앗들이 땅속에서 겨울 동안 웅크리고 있다가 봄에 새싹으로 나오나 보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
뿌리들이 겨울 동안 죽지 않고 땅속에서 월동을 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야 다음 해 봄에 풍성한 꽃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러다 올해 봄, 땅이 녹고 4월이 시작되었는데도 땅속 씨앗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는 듯하여 다시 조사를 좀 해봤다. 가을에 하는 노지 파종은 8월 말, 9월 초 정도에 씨를 뿌려 싹을 틔우는 것이 첫 번째 과정. 그리고 본잎을 몇 장 키운 후 뿌리를 어느 정도 성장시키는 것이 두 번째 과정. 세 번째로 그 뿌리들이 겨울 동안 죽지 않고 땅속에서 월동을 해야 하는 것이 마지막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야 다음 해 봄에 풍성한 꽃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래. 이미 지나간 일. 봄 파종의 기회도 있으니. 그래서 지난 4월 초 야생화 씨앗들을 다시 한번 마당에 뿌렸다. 루드베키아, 샤스타데이지, 꽃양귀비, 수레국화. 이렇게 지난봄에 뿌린 이 녀석들은 따듯한 기온과 정원 물 주기의 힘을 받아 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새싹이 마당에 가득가득, 모든 것은 계획 대로, 가드닝이 뭐 별거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5월 중순쯤에도 꽃양귀비 새싹은 도무지 자라날 생각이 없었다. 발아된 그 상태로 거의 한 달째. 새싹의 모습 그대로 성장이 멈춰 버린 것 같은 상태였다.
그래도 루드베키아와 샤스타데이지는 조금씩 조금씩 어떻게든 자라고는 있는 것 같았지만 이런 성장 속도라면 올해 꽃을 볼 수 없음은 물론, 과연 제대로 자라나기나 할지 걱정 가득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에키네시아. 작년에 꽃가게에서 모종을 사서 꽃이 피고 늦가을 씨앗을 채종 해서 올해 봄에 뿌렸는데 진짜 발아율이 최악이었다. 모두 쭉정이 씨앗들만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간신히 싹을 틔운 몇몇 녀석들은 꽃양귀비처럼 새싹의 모습으로 굳어 버린 상태였다. 다행히도 본체 옆에서 자라나고 있던, 기특하게도 스스로 조그맣게 번지고 있던 어린 녀석들이 있어서 이들을 조심스럽게 파내서 옮겨 심었다.
어린 새싹들의 이런 열악한 상태는 아마도 야생화 씨앗을 직파한 자리가 경계목들이 만든 그늘 때문에 햇볕을 잘 받지 못하는 자리인 것이 주 이유인 것 같다. 또 씨앗들을 대충 뭉터기로 뿌려 놓으니 돋아난 새싹이 자기들끼리 너무 오밀조밀, 서로 경쟁하는데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그해에 파종해서 키운 야생화 중에 그해에 꽃을 못 보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샤스타데이지가 그런 경우. 그래서 이 아이는 결국 6월 초에 모종을 몇 개 구입해서 따로 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수익률 최악의 노지 직파의 결과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녀석이 있었으니 바로 수레국화다. 이 녀석은 발아율도 최고, 성장도 나름 훌륭했다. 그렇게 수레국화는 다른 야생화의 씨앗들이 대부분 파종에 실패한 상태에서 5월 중순의 허전한 마당과 허전한 내 마음을 조금은 채워 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수레국화는 정원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다. 6월 중순, 간신히 파란 꽃을 몇 송이 피운 수레국화는 대부분이 비실비실. 새싹들이 서로 뭉쳐 있어서 키만 홀쭉하게 멀대 같이 커버린 수레국화는 결국 6월 말 장마의 시작과 함께 모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잡초보다 못한 모습으로 정원에 누워 있던 수레국화들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모두 뽑아 버렸다.
그래도 혹시 야생화의 노지 직파에 또다시 도전한다면 수레국화를 다시 한번 선택하게 될 것 같다. 비록 엉망진창의 상태로 키우기는 했지만, 나와 같은 초보 가드너도 씨를 땅에 뿌려 꽃까지 본 유일한 결과물이니.
꽃들이 가득한 정원을 만들고자 할 때, 반드시 꽃들의 키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키가 큰 아이들은 정원의 뒤쪽에, 키가 작은 아이들은 정원의 앞쪽에
이렇게 나의 야생화 노지 직파는 거의 실패.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두 달을 넘게 애지중지 노심초사 지켜보고 이 무슨 헛고생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야생화를 키워 보겠다고 도전하면서 몸으로 배운 것들이 있기는 하다.
먼저 노지 직파를 하려면, 8월 말 9월 초 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에 할 것. 봄에 파종을 해서 키우면 그해 꽃을 못 보거나 여름을 한참 지나서야 볼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웬만하면 처음부터 씨를 땅에 뿌려 키우려고 하지 말고, 돈이 좀 들어가더라도 꽃들의 모종을 사서 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씨앗 파종은 가드닝에 조금 익숙해지고 식물들의 특징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면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씨앗을 뿌릴 때 최대한 넓게 넓게 뿌려주거나 아니면 수고스럽더라도 한 알 한 알 씨앗들을 충분한 간격을 두고 심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서로 경쟁하지 않고 건강한 상태로 제대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드닝을 하는 사람들이 모종판에서 씨앗들을 하나씩 발아시킨 후 어느 정도 튼튼하게 키운 후에 땅에 심는 이유를, 또 뭉쳐서 돋아난 싹들을 아까워하지 않고 과감히 솎아 내 튼튼한 한 녀석만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또 중요한 것은 꽃들로 가득한 정원을 만들고자 할 때, 반드시 꽃들의 키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본적인 사항을 고려하지 않아서 싹이 터서 좀 자란 수레국화들을 5월 중순쯤 대거 다른 자리로 옮겨 주었다. 그리고 느리게 느리게 자라고 있는 루드베키아, 샤스타데이지의 새싹들도 이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결국 옮겨서 자리를 다시 잡아야 할 것 같다.
키가 큰 아이들은 정원의 뒤쪽에, 키가 작은 아이들은 정원의 앞쪽에. 꽃을 화단에 심을 때 꽃만 보면 안 되고 이들의 키와 몸집도 고려해서 밸런스 있게 심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수고스럽게 키운 꽃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저기 꽃 구매처에서 각종 꽃에 대한 정보들을 보여줄 때 이들의 키와 크기를 꼭 보여주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이렇게 2022년 봄의 야생화 꽃씨 파종은 대실패. 하지만 이래저래 몸으로 배운 것들이 있으니 내년의 작은 정원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많은 꽃들이 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물가는 오르고, 월급은 더 오르지도 못할 것 같은데, 다가올 가을에 심고 싶은 야생화 모종의 위시 리스트는 늘어만 가고 있는 초보 가드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2년 5월 1일~5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