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생초보 가드너다
작년 봄, 우리 집 작은 마당에 잉글리시 라벤더, 러시안 세이지, 그리고 엔들리스 섬머 수국을 심고 또 야생화로 에키네시아, 스텔라 원추리, 왜성 백합 등을 심었다. 하지만 난 이 아이들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어떤 모습으로 봄에 다시 태어날지 전혀 감이 없었다.
그래서 겨울이 끝나고 지난봄, 노심초사하며 빈 땅을 쳐다보고 가지만 남은 앙상한 수국과 라벤더를 매일매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땅에서 잎이 솟아나고 가지에서 새순이 돋아 나더니 말 그대로 식물들이 폭풍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봄이라는 한 해 동안의 사이클을 겪어 보니 꽃과 나무들의 생명력과 자연의 신비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가드닝이란 것을 처음 시작하면서 노지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라는 한 해 동안의 사이클을 조금이나마 겪어 보았다. 그리고 꽃과 나무들의 생명력과 자연의 신비를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산과 들, 거리에서 매일 아무 생각 없이 마주치던 꽃과 식물들이, 정말 대단하고 수고스럽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5월 장미의 시간이 끝나고 6월이 시작되면서, 우리 집 작은 마당에서 수국이 본격 개화를 시작하고 아스틸베도 모두 활짝, 그리고 라벤더도 가득해졌다. 6월의 시작을 이렇게 수국과 아스틸베와 라벤더가 알렸다면 왜성 백합과 스텔라 원추리가 6월의 중순을 대기하고 있다.
모두 노지 월동을 성공적으로 한 이 야생화들은 지난봄, 큼직한 싹을 땅에서 쑤욱 올리더니 작년보다 훨씬 풍성한 꽃들을 보여주고 있다. 에키네시아도 마찬가지다. 데이릴리 옆에 자리 잡은 에키네시아는,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작년 꽃가게에서 사서 마당에 심었을 때보다 거의 두 배의 몸집과 큰 키로 자라나서 7월을 준비 중이다.
겨울을 이겨낸 어엿한 야생화들은 내년 봄과 여름에는 풍성한 꽃들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 중이다
이처럼 야생화들의 노지 월동을 몸으로 경험해 보고 나니 자신감이 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 봄 샤스타데이지와 꽃 양귀비, 그리고 루드베키아, 수레국화 등의 또 다른 야생화들의 씨앗을 마당에 뿌렸다. 노지에 심어진 이 씨앗들이 여름에 별 탈 없이 성장하고 가을에 뿌리를 튼튼하게 땅속에서 뻗어 낸다면, 겨울을 이겨낸 어엿한 야생화들은 내년 봄과 여름에는 풍성한 꽃들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야생화보다 더 뿌듯한 건 6월 초에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해서 6월 말까지 활짝 피어 있는 엔들리스 섬머 수국이다. 작년에 이파리 몇 장 달려 있는 조그마한 아이들을 심었는데 1년 만에 몸집을 두 배가 넘도록 키웠다. 그러더니 우리 집 아이들 머리 크기만 한 꽃봉오리를 매달고 비가 와도 쓰러지지 않는 튼튼한 자태를 뽐내며 한 달이 다 돼가도록 생생하게 피어 있다.
이제 1년 차, 꽃들이 별로 없는 우리 집 작은 마당에서 한 달 가까이 커다랗게 피어 있는 수국 꽃들은 그 자체로 존재감 가득. 이제 마당에서 새롭게 필 꽃은 에키네시아 정도밖에 없는데, 조금 더 오래도록 피어 있어 주길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잉글리시 라벤더. 이 아이는 잎이 달린 채로 겨울을 보냈는데, 봄이 되니 목질화된 가지에서 지난해의 잎들을 그대로 두고 갑자기 싱싱한 녹색잎이 막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키가 자라나고 잎을 키우더니 꽃대를 쭉쭉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 말 보라색의 꽃들이 활짝 피었는데, 작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고 큼직한 라벤더 꽃들. 작년에 라벤더 모종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처음 심었을 때는 그냥 풀과 같았다. 그래서 난 '라벤더는 풀이군, 봄이 되면 새싹들이 다른 풀들처럼 땅에서 다시 솟아 나오나 보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아랫부분은 목질화가 되어 나무가 된 것처럼 변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가을, 아마도 지금의 라벤더 자리에 작약이나 다른 장미들을 심을 예정. 그래서 라벤더 자리를 옮겨 주어야 할 것 같은데 새롭게 옮긴 자리에서 심한 몸살을 겪게 되어 내년에는 꽃들이 풍성하게 피지 못할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 한가득이다.
아, 우리 집의 또 다른 장미 벨렌 슈필은 결국 꽃을 다 피우지 못하고 이번 시즌을 끝냈다. 세 개 달랑 있던 꽃봉오리 중 두 개는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 버렸고, 나머지 한송이만 겨우겨우 피어냈다. 한 송이라도 이렇게 꽃을 피운 것이 대견하긴 한데, 이미 꽃을 활짝 피우고 다음 2차 개화를 준비하고 있는 퀸 오브 하트와 비교해서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성장이 느린 것으로 유명한 장미 벨렌 슈필은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2년 6월 1일~6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