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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또다시 자란다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생초보 가드너다

by 장만화

식물들의 줄기를 자르면 새로운 잎과 가지가 또다시 나와서 성장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어도 정원의 식물들에게 가위를 들이대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 잘못해서 혹시라도 꽃이, 그리고 나무가 죽어 버리면 어떻게 하지? 이런 와들와들함이 식물들을 자르기 전에 꼭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두려움에서 아주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지난 5월 말 장미의 데드 헤딩 후, 꽃봉오리를 잘라낸 밑 부분에서 새로운 눈들이 쑤욱 올라오더니 어느 순간 귀엽고 상큼한 잎과 가지를 올망졸망하게 만들어 내고 있다.


수국도 마찬가지다. 6월 말 데드 헤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눈들이 쑥쑥 올라오더니 이제는 제법 잎의 형태를 만들면서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다.

GD6_2.jpg 꽃봉오리의 데드 헤딩 후 새순이 나오고 있는 수국

여기서 잠깐. 식물마다 눈이 만들어지고 크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장미는 줄기에 교대로 잎이 엇갈려 붙어 있어 가지를 자른 바로 밑의 잎과 가지 사이에서 눈이 성장하여 자란다. 반면 수국은 두 개의 잎이 나란히 붙어 있고 양쪽 잎 부분에서 새로운 눈 두 개가 동시에 나와서 성장한다.

GD6_1.jpg 장미는 본가지와 잎가지 사이에서 새로운 줄기와 잎이 나온다

아직은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식물의 줄기에 잎이 붙어 있는 모양을 잘 고려하면 앞으로 식물이 어떤 모양으로 성장할지 예측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다음으로 잉글리시 라벤더. 이 아이도 꽃대를 잘라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성장을 시작했다. 그래서 새로운 파릇파릇함이 가득. 이렇게 조금 더 자라다가 어느 순간 또 한 번 꽃대를 올리고 여름의 중하순에 2차 개화를 시작해 우리 집 작은 마당에 소중한 보랏빛 컬러를 칠해줄 것 같다.

GD6_7.jpg 정원을 보랏빛 컬러로 물들여 주는 잉글리시 라벤더



이처럼 여름의 시작과 함께 무럭무럭 새롭게 커나가는 친구들이 있다면 전혀 뜻밖의 선물을 선사해준 아이가 있으니 바로 클레마티스 리틀 머메이드다. 지난봄에 작은 아이를 마당에 심었는데, 이후 무럭무럭 자라나더니 어는 순간 꽃봉오리를 하나 만들고 꽃을 피워 냈다. 딱 한송이.


처음에 이 아이를 사 왔을 때 꽃송이가 몇 개 달려 있었는데 그때는 연한 핑크빛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핀 꽃은 자줏빛에 가까운 선명한 분홍색. 꽃의 모양도 처음 사 왔을 때와는 다르게 피었다. 하지만 뭐 상관없다. 땅에 심은 후 잘 크더니 이렇게 한송이라도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꽃을 피워낸 것이 정말 대견스럽다.


IMG_5938.jpeg 올해 딱 한송이가 피어난 어린 클레마티스 리틀 머메이드

한편 클레마티스 더치 오븐 에든버러는 조금 크나 싶더니 뚝 멈추어 버리고 잎을 하나 내더니 또다시 성장을 뚝 멈추어 버리고 이런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도 붙어 있는 잎들은 건강해 보이고 잊을만하면 새로운 잎도 내고, 줄기도 올리고 하는 걸 보니 혼자서 꼼지락꼼지락 새로운 땅에 적응하며 꾸역꾸역 커 나가고 있는 것 같다.


다음은 에키네시아. 7월 초가 되니 본격 개화를 했다. 분홍과 보라 그 어딘가의 컬러를 보여주고 있는 이 에키네시아는 이제 혼자 위풍당당하게 우리 집 마당의 여름을 책임지고 있다.


올해 봄, 파종 대참사를 겪고 나서 꽃이 별로 없는 우리 집 마당에 유일하게 활짝 핀 이 에키네시아는 그래서인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것 같다. 내년에는 올 가을 새롭게 심을 모종들과 마당 한쪽에서 옹기종기 자라고 있는 루드베키아 등과 함께 여름 정원을 빛내주길 기대해 본다.

IMG_5998.jpeg 여름을 상징하는 꽃 중 하나인 에키네시아가 활짝 핀 정원



월동을 잘 한 러시안 세이지가 비교적 건강하게 자라나서 꽃도 좀 피긴 했는데 생각보다 풍성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를 몇 번 맞고 났더니 휘청휘청. 키도 너무 크고 늘어지는 자태가 보기 싫어서 꽃들이 질 때쯤 싹둑 끊어 주었다. 올 가을에는 세이지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장미를 심을 예정. 그래서 이 녀석과는 작별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올봄에 노지 직파해서 발아율도 좋고 꽃도 핀 수레국화들은 결국 모두 뽑아 버렸다. 너무 오밀조밀 씨를 뿌려 모두들 서로 키만 크고 홀쭉이로 자라나 버렸는데, 지난 장맛비에 모두 쓰러지고 난리가 나서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수레국화가 있던 자리에 다른 심고 싶은 야생화들이 많아서 내년에는 수레국화를 포기하게 될 것 같다.


여름의 본격적인 시작은 이렇게 식물들의 새로운 성장과 함께 하고 있다. 식물을 노지에서 키우기 전에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계절의 시간표에 따라 묵묵히 자신들만의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나의 인생의 시간표에서 어디쯤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2년 7월 1일~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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