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다.(9차시)
누구에게나 한 해의 끝과 시작은 12월과 1월이다.
그러나 교사에게 있어서 한 해의 끝과 시작은 2월과 3월이다.
학교는 학사일정이 학년도로 구분된다.
3월부터 2월까지를 한 학년도로 구성하게 된다. 학기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빠른"년생이 생기기도 했고, 1월부터 성인이 되는 고3 재학생이 생기는 것이다.
교사에게 12월부터 2월은 내가 맡은 반을 보내고 학교생활기록부를 정리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그래서 교사에게는 아직 "올해"가 2020년처럼 느껴진다.
"내년에는... 아니다 올해 3월부터는"이라는 말이 입에 붙어있다. 학년도로 보면 아직 2020학년도지만, 상식선에서의 내년은 2022년이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 1급 정교사가 되기 한 해 전부터 6학년을 맡기 시작했고, 1급 정교사가 되고 1년이 지나 6학년 부장 겸 정보과학부장을 맡게 되고, 학교를 옮기게 되고 나서는 6학년 부장을 2년간 하게 되었다.
그렇게 5년간 6학년을 맡아왔고, 6학년은 학년도의 끝이 조금 다르다.
6학년은 졸업식을 하기 때문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것보다 6년간의 초등학교 생활을 모두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생활기록부도 6년 치를 다 보며 세세하게 오류가 없는지를 살펴야 하고, 졸업앨범과 졸업식을 준비해야 한다.
5년간 졸업을 시킬 때마다 드는 생각은,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내가 놓치고 하지 않은 게 없는가를 살펴보는 게 시간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내가 쓴 교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종업식과 졸업식이 끝나고 나면, 2월에 학교를 떠나시는 분과 새로 오실 분이 정해지고, 인계인수서를 작성하고, 12월에 작성한 학년 및 업무 희망서를 가지고 업무분장이 진행된다.
맡고 싶은 학년과 업무를 쓴 학년 및 업무 희망서를 기나긴 상의의 과정이 시작된다.
그 학년은 어렵다. 그 업무는 어렵다. 이 업무보다는 저 업무를 주시면 더 잘할 수 있다. 휴직을 하거나 예정되어있다. 이런 각자의 사정이 더해지고, 이를 조정해야 하는 교감선생님은 머리가 아파온다. 모두가 희망하는 대로 업무를 배정하면, 빈 틈이 분명히 생기고, 불균형이 분명히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전화를 하고, 상의를 하고, 부탁을 한다. 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고, 명분이 강조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 정리가 될 즈음, 인사자문위원회를 통해 업무분장의 세세한 틀을 다시 살펴보고, 교장선생님이 결정을 하시면 업무분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업무분장을 전 직원이 모인 곳에서 발표를 하고 업무 인계인수가 시작된다. 작년에 했던 일들과 앞으로 올 일들, 해야 할 순서와 프로세스를 명확히 인계해야 한다. 이 인계인수가 꼬이면 업무를 받은 선생님은 계속 혼돈 속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년과 반 배정이 정해지면 내 교실이 바뀌고, 내 짐을 정해진 교실로 옮겨 내 교실로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학년이 모여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우리에게 맞는 교육과정으로 만들고, 내가 다시 재구성해서 나만의 교육과정을 만든다. 그리고 받은 학생들 명단으로 다가올 학기의 시작을 준비한다.
작년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져 수업 시작을 부득이 4월에 시작하게 되었지만, 거의 모든 학기의 시작은 3월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원격수업이 섞인 형태로 수업이 진행되겠지만, 그래도 만날 수 있는 날이 작년보다는 많아질 거라고 예상하고, 또 바라고 있다.
아이들을 직접 보고 수업을 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원격수업으로는 만날 수 없는 그 생생함이 있다. 아무리 쌍방향 수업으로 아이들 얼굴을 보며 수업을 한다고 해도 직접 만나서 아이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반응을 느낄 수는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오는 것을 간절히 바란다. 제발.
또 올해는 다만 덜 글러먹은 교사가 되자고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