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쌤 Nov 28. 2020

하루아침에 백혈병 환자가 되었다.

2. 큰 병원으로

2015. 10. 10.(토)

 꿰매지 못한 무릎에 캐스트를 하고, 1시간 거리에 있는 대학병원에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사실, 근처에 있던 두 대학병원에 모두 가기 싫었다. 한 곳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투병생활을 했던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어느 한 곳에도 가기 싫었지만,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가까운 곳에 내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병원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얼른 빨리 검사 결과를 보고, 잘못된 거라며 그냥 무릎을 꿰매고 얼른 돌아가고 싶었다.




 외래가 오전에 끝나는 토요일이었기에, 응급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수술은 커녕 입원도 한 번 해본 적 없던 내가 이틀간 앰뷸런스를 타고, 입원을 했다가, 대학병원 응급실에 오는 기묘한 경험을 한꺼번에 하게 되었다.

 그 전 병원에서 받았던 진료의뢰서를 주고, 응급실에 와서 다시 피검사를 했다.

 이번엔 110,000. 정상수치에서 11배가 높은 백혈구 수치가 나왔단다. 입원을 해야 한단다. 백혈병은 확정이란다. 이제 급성이냐 만성이냐를 검사해봐야 한단다.


 나는, 일주일만 있다가 다음 주에 오면 안 되겠냐고 응급실 의사분께 물었다.

 학교에서 컴퓨터실을 리모델링하는 업무를 맡으며 내가 구매했던 컴퓨터와 책상들이 다음 주에 오기로 했었다.

 정말 멍청하게도 나는, 그게 먼저 떠올랐다. 그게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같았다. 그리고 나도, 어느 정도 아이들과 정리를 하고 오고 싶었다. 왜인지 모르게 아이들 얼굴을 다시 못 볼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의사분께서

 "일주일 뒤엔 환자분이 살아서 올 지, 돌아가셔서 올 지 몰라요. 절대 못 나가세요. 보호자 지금 오셔야 해요."라는 대답을 하셨다.


 보호자라니.

 어머니에게 애초에 어제 입원했던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전화로 내가 백혈병이란 걸 설명해야 했다.

 어머니 본인도 유방암으로 고생을 하셨고, 아버지는 1월에 돌아가셨다. 6월에는 큰 이모부가 돌아가셨다. 가족들에게도, 나에게도 올 해는 정말 최악의 해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혼자 어디서 몰래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전하기 싫었다, 아니 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한참을 응급실 의사분과 퇴원하겠다, 안된다, 입씨름을 하다가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내가... 지금 병원에 있는데, 어... 내 백혈구 수치가 좀 높대서. 잠시 와줄 수 있어?"

 "응... 바로 갈게."

 정말, 이런 전화를 해야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어머니가 오셨다.

 "엄마, 나 다음 주에 일이 많아. 나 일만 처리하고 다음 주에 바로 병원 올게. 의사분 설득 좀 해줘."

 

 어머니가 의사분과 따로 나가서 대화를 한참 하다가 들어오셨다.

 "다음 주 월요일에, 검사만 한 번 더 받아보자. 오늘은 토요일이라 검사가 제대로 안됐을 수도 있대. 그리고 백혈병이 정말 맞으면, 나가면 절대 안 된대."

 "알겠어.."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화들짝 놀라셨다. 괜찮냐고, 수술 하루면 되는 게 아녔냐고, 재차 물으셨다. 금요일에 교무부장님과 함께 병원도 와주셨었다. 그래서, 죄송하다고, 검사를 해봐서 잘못 나온 거라면 바로 복귀하겠노라고 말씀드렸다.


 무릎은 정형외과 선생님께서 오셔서 꿰매게 되었다. 그런데 응급실에서 꿰매는 건,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마취가 덜 되었는지 마지막 바늘을... 그냥 꿰맸다. 정말 눈물이 핑 도는 경험이다.


2015.10.12.(월)

 그렇게 월요일이 되었다.

 일요일에 어머니가 입원 수속을 도와주시고, 별일 아닐 거라며 위로해주셨다.


 입원을 하며 간호사분께서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직업이 어떻게 되시나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있어요."

 "상처가 잘 안 아물거나 하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코피가 잘 나시거나 피로감을 쉽게 느끼시나요?"

 "아니요. 요즘은 그냥 일이 많아서요..."

 "혹시 방사능이나 반도체 관련된 일을 하시나요?"

 "제가.. 학교에 다녀서요..."

  "아 맞다. 얘기해주셨지. 죄송해요"

 

 이 질문을 하고 가신 뒤에 의사분께서 오셔서 의아해하셨다. 증상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나중에 가족들과,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를 했던 거지만, 아버지가 뒤에서 살짝 밀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이거 발견 못하면 죽는다는 경고였다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피검사 결과로는 백혈병 확정이었다. 증상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골수검사를 통해 내가 만성인지, 급성인지, 골수성인지, 림프구성인지 파악해야 했다.


 여하튼 나는 이렇게 하루아침에 백혈병 환자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