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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Nov 27. 2020

나는 백혈병 환자다.

1. 시작

 나는, 백혈병환자다. 그것도 만성 골수성 백혈병. 

I am 백혈병 같은 느낌이지만, 나는 이 친구와 5년째 함께 있다.




 2015년.

 시작은 어이가 없었다.

 나는 이제 막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이 된 지 갓 2년차.

 하지만 3학년 주무와 정보업무를 맡아서, 정보보안감사를 무사히 치러내고, 컴퓨터실을 리모델링하는 예산 3천만원을 막 품의를 끝낸 상태였다. 

 임용이 되자마자 대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군 복무를 아직 하지 않은 상태라, 5년마다 다시 하는 재신체검사를 받으러 병무청에 가야 할 시점이 되었다. 



 2015.10.09.(금)

 그 날은 여느 때와 같이 피곤했고, 여느 때와 같이 일어나서 준비를 했지만, 

 무언가. 그날은 달랐다. 

 

 하필 공가를 쓰고 학교에 출근하지 않는 날이기도 했고, 하필 샤워를 하고 핸드폰을 욕실 찬장에 두고 그냥 나온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하필, 그 핸드폰을 다시 집으러 들어갈 때 바닥이 미끄러웠을 뿐이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하필이면 욕실에서 미끄러졌고, 하필이면 오른 무릎이 양변기 옆을 쳤고, 하필이면 무릎 왼쪽이 찢어졌다.


 그뿐이었다. 그랬어야 했다.

 그냥 그 날이 재수가 없는 날이었고, 병원에 가서 간단히 꽤매면 될 일이었다. 신체검사 일자는 다시 받으면 될 일이었다. 


 119에 전화를 해서 무릎이 찢어졌어요. 와주실 수 있을까요. 라고 덤덤히 이야기를 했다. 옆에 마침 넥타이가 있어서 넥타이를 간단히 무릎 위쪽에 묶어 지혈을 했다. 피가 흐르는 것 같아 물티슈로 가만히 상처부위를 대고 ,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구급대원께서 오셔서 "지혈을 잘 하셨네요, 잠깐 이 티슈를 떼볼게요."라고 하며 티슈를 떼내자, 피가 기다렸다는 듯 흘렀다. 다시 거즈를 대고, 지혈을 하며 근처 병원으로 갔다.


 "무릎 안쪽 근육이 찢어졌을 수도 있겠네요. 보고 오후에 수술하고, 내일 쉬었다가 퇴원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간단한 수술이다. 처음하는 수술이었지만, 간단히 꽤매는 거라니 뭐 엄마한테 얘기할 것 까지는 없겠지.


 그렇게 입원을 위한 "간단한 피검사"와 간단한 엑스레이 찍기 등의 기초 검사를 하고

 병실에 앉아있었다. 그 다음날인 토요일은 교직원 친목여행이 있었다. 그래서 교감선생님께는, 상황을 말씀드리고 내일 여행이 어려울 것 같다. 월요일까지는 병가를 써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 날 오후. 의사선생님께서 오셔서 피검사 결과가 조금 이상해서 다시 피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며, 피를 다시 뽑고, 내일 결과를 보기로 했다. 



 2015.10.10.(토)


 "원래 백혈구라는게 4,000에서 10,000사이의 갯수가 정상범위인데, 환자분께서는 수치가 100,000이 나왔어요. 저희 기계가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검사결과를 가지고 큰 병원으로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무릎은요?" "지금 상황에서 꽤매면 더 안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 가서 꽤매셔야 합니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새햐얘지기 시작했다.

 "백혈구가 정상치보다 쓸데 없이 많아지면, 정상적인 세포들까지 일을 못해. 그걸 백혈병이라고 한단다." 

 쓸데없이 내가 아이들에게 백혈병을 설명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어, 이걸 내가 걸린다고? 나 이제 죽는거야?

 

 아버지가 그 해 1월에 돌아가셨다. 올해 두 번의 장례를 치르게 되면, 우리 가족은 산산조각나게 될 것이다.


 그 생각 밖에는 나지 않았다.


 내가 임용이 된 걸 축하받은지 2년 만에, 난 죽게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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