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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Nov 30. 2020

백혈병 환자의 첫걸음

3. 환자라는 것을 인식하기

 의사 선생님께서 다음 일정을 알려주셨다. 일단 수액을 맞고, 표준형 백혈병 치료제를 먹으면서 치료를 하고, 골수검사를 일정에 맞춰하고 나면 만성인지, 급성인지, 골수성인지, 림프구성인지 알 수 있게 되고, 그러면 거기에 맞는 치료제와 치료 일정을 정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입원을 하면서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은 약만 잘 먹어도 치료가 잘 된다고 한다는 이야기, 군대 면제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신체적으로 고통이 오는 곳이 없다는 이야기 등으로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데 목표를 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단 결과 백혈병은 확실하다, 하지만 요즘 치료가 잘 되고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이 나가실 때 잠시 따라 나갔었다. 그리곤 다시 돌아오셔서 증상이 없을 때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입원했을 때 병원에 간호대 학생들이 실습을 나와있었다. 참관도 하고, 혈압도 재보는 등 여러 실습을 하는 중이었다. 남자 실습 간호사 한 분, 여자 실습 간호사 두 분. 총 세 분이 내가 입원한 혈액종양내과에 배정되었다. 


 실습 간호사 이야기를 왜 꺼냈냐면, 그 실습 간호사 한 분이 나중에 이야기해준 것이 있다.

 "어머님이 선생님 되게 걱정하셨어요."

 "네? 엄마 별로 걱정하는 티 안 내셨는데?"

 "선생님이 백혈병이라는 이야기 듣고 교수님 나오실 때, 어머님이 따라 나와서 "완치되는 병인가요? 우리 아들 살 수 있는 건가요?"라고 한참 걱정을 하시며 물어보셨어요. 교수님이 치료도 잘 되는 병이라고 설명해주시고 나서야 안도하셨어요."


 엄마는 본인이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고 병원에 계실 때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셨다. 병실 대장이 되신 것처럼 같은 병실 환자들과 함께 산책을 다니시고, 병문안을 가도 항상 웃고 계셨다. 

 엄마는, 그렇게 어두워지는 게 싫다고 하셨다. "엄마는 안 힘들어?"라고 물어도 "괜찮아!"라고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본 엄마는 힘들 때, 울고 싶을 때 화장실에서 울고 눈을 씻고 나오셨다. 어렸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을 커서 알게 되었다. 

 그런 데다가 엄마는 자기 당신이 더 큰 병을 앓아본 적이 있었기에, 혈액암이라고 불리는 이 병에 지레 걱정하셨을 것이다. 듣기에도 워낙 큰 병이 아닌가. 나도 처음엔 죽는 줄만 알고 있었으니 어머니는 오죽했을까. 그렇게 내 앞에서는 걱정하지 않으시는 듯했지만, 바로 나가서 묻고, 또 물으실 정도로 걱정이 많으셨던 거였다. 


 실습 간호사의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 마디라도 입 밖으로 내뱉었다가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나는 실습 간호사에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조용히 화장실에 가 펑펑 울었다. 나는, 어떻게 생각해도 불효자였다. 임용 공부를 하지 않아 부모님께 대못을 박고, 이제 갓 임용이 되자마자 아버지께 효도다운 효도 한 번 못해봤는데 돌아가셨다. 이제 마음을 추스를 만하니 이제 내가 아팠다. 이게 불효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아프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고통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꿰매진 무릎만 실밥을 풀면 겉만 봐서는 전혀 아픈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보이기 싫었다. 물론 옆에 링거를 들고 다니고, 가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지만, 그냥 "아파"보이기가 싫었다. 그래서 엄마가 그랬듯 웃고 다니고, 더 많이 걸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병동이 병동이라, 혈액종양내과, 즉 암환자들이 가득한 이 병동은 내게는 공포였다. 밤만 되면 신음이 온 병실에서 울리고, 아침과 점심 식사를 암환자식으로 드셔야 해서 간단한 캔 하나만 주어지는 분들 앞에서 태연히 국밥을 먹고, 돈가스를 먹기는 힘들었다. 물론 치료를 하러 나가셨을 때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아픈 데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모두가 계실 때는 별 일이 없으면 나가서 먹고 싶었다. 그 안에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잠이 더 줄었다. 그 전에도 잠은 적었는데, 밤에 병실 안에서 들리는 작은 신음들을 참기 어려워 간호사 스테이션 앞에서 한참을 있다가 새벽 2시에 잠들고, 피검사와 혈압을 재는 4~5시에 깨 슬슬 걸어 다니다가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점심은 병원에서 제공하는 특식(돈가스 등)을 먹었고, 저녁에는 동생이나 엄마가 사 온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한동안 엄마가 계속 계셨다가 내 만류로 집으로 돌아가시고, 아침저녁으로 와주시다가 동생과 나누어 병원에 오셨다.

  

 이제 본격적인 환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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