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 (쓰네카와 고타로, 2005)
"자기야, 동화를 마지막으로 읽어본 게 언제야?" 차영이 남편 심희에게 묻는다.
"글쎄, 한 20년은 지나지 않았을까?" 심희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럼 자기가 그동안 읽었던 소설들은 동화가 아니라는 걸까?" 차영이 묻는다.
"음... 글쎄, 애들이 읽을만한 것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300쪽이 넘어가는 책을 동화라고 하긴 어렵지. 애들도 읽다가 지쳐버릴 테고." 심희가 말했다.
"그럼 분량이 애들도 읽을 수 있을 정도라면 동화라고 할 수 있을까?" 차영이 묻는다.
"내용이 중요하지 않을까? 아무리 내용이 짧고 표지를 귀엽게 꾸며도 지나치게 사회비판적이거나 우울한 내용이라면 애들한테 보여주기는 꺼려지니까." 심희가 말했다.
"왜?" 차영이 묻는다.
"왜라니, 뭔가 꿈도 희망도 없는 얘기를 애들한테 들려줬다간 냉소적인 어른으로 자랄 거라고." 심희가 말했다.
"그럼 냉소적인 어른은 나쁜 거야?" 차영이 묻는다.
"음... 글쎄. 뭐랄까. 매사에 의욕이 없고 되는대로 사는 사람을 보면 힘이 빠지긴 해. 그걸 명확하게 나쁜 거라 말하기는 좀 어렵긴 하지만. 냉소적인 사람도 나름의 사연이 있을 테고." 심희가 말한다.
"그럼 아이들에게는 어떤 얘기를 들려줘야 하는 걸까?" 차영이 묻는다.
"음... 글쎄 생각해 본 적 없네. 나는 어렸을 때 누가 주변에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어서. 아니, 해줬지만 이렇다 할 게 떠오르지 않네. 이야기라고 하면 보통 책으로 접한 것 같아." 심희가 말한다.
"특히 그중에는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라는 책도 있었는데, 뭔지도 모르고 본 기억이 있어. 갑자기 물어보니까 생각나네.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 복수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게 왜 어렸을 때 있었는지 모르겠네. 분명 어린이 문학 전집 같은 데 있었을 거야."
차영이 심희의 얘기를 듣고 잠시 고개를 돌린다. 창밖은 이미 밤이 됐지만 가로등이 켜져 있어 어둡진 않다.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는 어두운 곳을 찾기가 더 어려우리라.
"애초에 어른이란 뭘까? 나는 아직 내가 어른이란 생각이 들진 않거든." 차영이 말했다.
"몸은 어른이지만 잘하는 것도 없고, 당장 혼자서 살라고 하면 막막하고 우울해지고 그래."
"<야시>를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가 저마다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구나. 삶은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는구나. 뭐 이런 생각."
"아이에게 비극이 닥칠 수도 어른에게 비극이 닥칠 수도 있어. 어른이라고 대처를 잘하는 것도, 아이라고 무조건 어리석게 구는 것도 아니야. 운도 따를 수 있고, 애나 어른이나 조력자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분명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모두 아이지만 담담하게 삶을 살아가거든. 그들 앞에 어떤 일이 있든지."
"그런 그들을 보고 있자면 무언가 마음에 울림이 느껴져. 그리고 나도 결국 내 길을 갈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다행이라면 자기는 혼자가 아니라는 거지." 심희가 웃으며 차영의 말을 끊는다.
"응." 차영도 웃는다.
차영이 책을 덮었다. 지금 심희와 있는 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삶은 슬픈 일만 가득하지도 즐거운 일만 가득할 수도 없다는 걸 알기에.